12일 오후 100만명(주최측 추산ㆍ오후7시30분 기준)의 시민들로 가득 찬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 서울 도심 일대에는 국정농단 사태를 비꼬는 거대한 풍자의 장이기도 했다. 집회 현장에선 웃음과 환호가 떠나질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부도덕한 정권에 절망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오후4시 민중총궐기 본집회가 시작하기 전 주최 측은 참석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하품 체조’를 선보였다. 하품체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 3억5,000만원을 들여 만든 ‘늘품체조’를 풍자한 이름이다. 시범자는 단상에 올라 “3억5,000만원짜리 늘품체조 대신 3,500원짜리 하품체조를 가르쳐 드리겠다”고 말해 서울광장에 모인 수십만 시민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와 고개를 앞으로 깊이 숙이는 동작을 할 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검찰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본떴다”고 설명한 뒤 팔을 펴면서 별안간 “하야”를 외쳤다.
서울시청 서울도서관 앞에선 문화계 인사들의 재능기부가 이어졌다. 자신을 ‘문체부 블랙리스트’로 소개한 임옥상 화백은 우레탄폼과 한지로 만든 박 대통령과 최씨의 대형 얼굴 상에 못을 꽂아 넣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얼굴 상에는 ‘오방낭’, ‘차은택’, ‘고영태’라고 적혀 있었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임 화백을 따라 못을 꽂는 데 동참했다.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번뜩이는 피켓도 다수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 참가자는 ‘배터리도 5%면 바꾼다’며 끝없이 추락한 대통령 지지율을 비꼬았다. 또 다른 시민은 최씨 딸 정유라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빗대 ‘지지율도 실력이야! 니 부모를 탓해!’라는 푯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닭 머리 모양의 탈을 쓴 대학생들과 닭 목을 비튼 조형물도 적지 않았다. 조형물에는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때 언급해 패러디 대상으로 전락한 “내가 이러려고…” 문구를 새겨 넣었다.
참가자들은 개사한 노래도 목놓아 불렀다. 주최 측은 야구 응원가로 많이 쓰이는 ‘아리랑 목동’이나 가수 10㎝의 ‘아메리카노’를 개사해 중간중간 ‘하야’ 추임새를 넣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제에 참가한 가수 모세는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곡 ‘SS’를 불렀다. ‘순실’의 영문 이니셜을 딴 곡 ‘SS’는 한 여자에게 아낌없이 베풀다가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배신감을 느낀 남자의 심정을 그린 노래지만 가사에 ‘곰탕’ ‘프라다 구두’ 등 최씨를 연상케 하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아울러 ‘내가 준 말 어딨어’ 등 정유라씨에게 말(馬)의 소재를 묻는 듯한 내용도 담겼다.
농민들은 ‘청와대’가 적힌 상여를 멘 채 “농업ㆍ농촌ㆍ농민 말살, 박근혜 퇴진하라”를 주장하며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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