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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사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입력
2016.1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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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는 두 개의 양면성을 가진 도시로 유명하다. 납치와 택시 강도 등 치안이 안 좋은 반면 풍부한 자연과 수많은 문화자원과 타코와 살사 등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져 광장 근처에서 옥수수를 집었고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에 놀랐다. 이 야생옥수수는 기원전 2000년경에 오악사카 지방에서 재배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과거나 현재나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식량이라고 한다.

태양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을 찾았다. 테우티우아칸은 '신들이 계신 곳'이라는 뜻으로,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로 죽은 자의 거리를 따라 세워져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 상상했던 것보다 테오티우아칸은 더 큰 유적지였는데 가이드에 따르면 이제 겨우 10분의 1 정도만 발굴을 마친 것이라 한다.

신을 모시기 위한 신전의 역할이라고 하는 태양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 본 피라미드와 규모는 작지만 비슷해 보인다. 달의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서니 주변의 거대한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멕시코인들에게 죽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페루에서 만난 멕시코인 라울(46)이 죽음의 날에 관하여 얘기해줬다. 죽음의 날은 멕시코의 기념일로, 이 날에는 초콜릿 등으로 해골모형을 만들고 이를 제단에 놓아 죽은 친지나 친구를 기억하면서 명복을 빈다고 한다.

김뻡 : 너희들은 왜 그렇게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거야?

라울 : 어려운 질문인데, 우리에게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야. 죽음을 예상하며 살아야 현재에 충실할 수 있지.

삶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며 선과 악도 하나라는 멕시코인들의 사상이 인생을 즐기는데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 목숨을 상당히 가볍게 여기는 요인이 된다고도 한다.

OECD 회원국이지만 여전히 가난과 폭력 부패와 같은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는 나라가 멕시코, 사실 그럼에도 국민들이 행복을 느끼는 나라가 또한 멕시코다.

늦은 저녁 광장 한켠을 지키고 있는 멕시코 경찰 아이반(40)을 만났다.

아이반.
아이반.

김뻡 : 멕시코의 행복순위가(21위) GDP대비 높은 이유가 뭘까? 범죄율도 높고 소득불균형도 높잖아! 연노동시간은 세계 1위고!!

아이반 : 한마디로 얘기하면 기질이야.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고 농담하고 그게 멕시코 사람의 본성이지.

김뻡 : 그래? 멕시코 사람들 일할 때 보면 분명 뭔가 힘들어 보여. 그런데 굉장히 상반되는 게 공원 등에서 남녀노소 세대불문 진한 애정행각을 아무렇지 않게 자유롭게 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

아이반 : 하하 예술궁전 앞 공원에 가봤구나. 멕시코는 사실 불평등이 심각하고 가난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해. 멕시코인들의 연근로시간이 많은 거 알잖아. 우리에게 삶은 고통이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거지. 따뜻한 인간관계 가족애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걸 수도 있어. 우리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들, 친구들과 웃고 넘기거든.

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 많다. 시간당 실질임금은 15.67달러로 OECD 회원국 평균 23.36달러의 3분의 2 수준이다.

반면에,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2,246시간으로 가장 긴 멕시코는 연간 실질임금이 1만4,867달러로 가장 낮다.

김뻡 : 너는 언제 행복해?

아이반 : 나는 사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사회에 유익한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부터 행복했던 것 같아. 내게 있어 운명이니 신이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그냥 최대한 삶에 만족하도록 노력해야지.

학자들은 행복의 50%가 유전적 요인에서 온다고 한다. 삶을 대하는 그들의 가벼운 태도,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해진다는 얘기는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걸까?

멕시코인들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루차리브레(멕시코식 레슬링)를 보라는 말에 마지막 날 루차리브레 시합장을 찾았다. 경기장 내에 들어서니 웅성웅성 대는 사람들 속 선수들이 갖가지 퍼포먼스로 입장을 한 후 경기가 시작되자 관객들이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루차리브레는 멕시코가 사랑하는 국민 스포츠다.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싸움’을 뜻하는데, 가이드에 따르면 가면을 쓰고 경기를 해야 하는 루차도르(루차리브레 선수)는 경기장 밖에서는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다.

멕시코인들에게 루차도르는 그저 레슬링을 하는 사람이 아닌 가난하고 힘든 삶에 힘과 희망을 주는 열정 그 자체라고 한다. 경기를 바라보는 멕시코인들의 얼굴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루차도르를 바라보며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멕시코인들은 힘이 들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루차도르에게서 희망과 꿈을 찾는 것일까?

“세상에 규칙 다 지키며 사는 놈이 어딨냐, 모두 다 반칙이지.”

루차 리브레를 보며 반칙왕 영화 속 대사가 스쳐 지나갔다. 어른들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 모두 반칙왕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인 걸까? 반칙왕들은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야지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보람 그리고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부패한 민주정부에서는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고 한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그 안에서 우리들은 어떤 희망 그리고 꿈을 가져야 할까?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사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행복여행가 김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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