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TPP, 차기정부로 넘길 것”
경제 패권 둘러싼 정면충돌 조짐
트럼프, 中 환율조작국 지정하면
위안화 국제화에 타격… 보복 가능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미 공화당의 원내지도부가 트럼프가 공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방침을 확인한 가운데,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TPP승인안을 중의원에서 강행처리하며 배수진을 쳤다. 미중간 무역전쟁 가능성에 일본까지 끼어든 모양새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트럼프 신정부와 맞서긴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미중간 승부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트럼프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예고된 가운데 중국의 맞대응 여부에 따라 ‘경제패권’을 둘러싼 정면충돌이 가시화하는 양상이다.
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9일(현지시간) “TPP비준안을 안건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며 “TPP나 다른 무역협정에 관한 결정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달렸다”고 선언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TPP를 ‘오바마 레임덕 회기’에 처리하지 않고 내년 초 출범하는 신정부로 넘기기로 못박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연립여당은 10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야당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TPP승인안을 강행처리했다. 참의원 심의가 시작된 11일 야당측이 “트럼프가 당선됐는데 바보짓을 하는 것”이란 비난을 쏟아냈지만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승인하고 일본이 주도해 조기발효 기운을 높이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비장의 성장전략’성과물로 TPP를 내세워온 아베 정권으로선 TPP의 좌초를 보고만 있기 힘든 상황이다. TPP가 발효되면 세계국내총생산(GDP) 40%를 차지하는 거대경제권이 탄생하며, 미국에 이어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미 여당 내에선 “TPP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탄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히려 국내 농업의 타격을 이유로 반대해온 야당과 농촌지역에선 “일본이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며 반대 목소리를 키우는 상황이다. 아베 정부의 TPP승인 속도전이 오는 17일 트럼프와 만나기 전 ‘압박카드’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신 중국이 미국 중심의 TPP에 맞서 추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영향력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11일 중국 언론은 일제히 RCEP 추진이 반사이익을 얻고 진행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도 이 쪽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함께 TPP에 빠져있는 한국도 RCEP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미중간 무역ㆍ통상마찰의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실제 추진할지 여부다. 선단양(沈丹陽)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날 “양국은 광범위한 공통이익을 갖고 있어 장기적이고 안정된 경제무역을 발전시키는 게 근본이익”이라며 다소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위안화 환율을 타깃으로 무역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 자체는 무역전쟁의 수단으로서 실질적인 효과가 거의 없지만 다른 수단과 맞물릴 경우 고율의 관세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온 중국으로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중국은 미국산 상품 수입보다 대미 수출이 4배 가량 많아 보복의 기회가 더 제한적이다. 대신 보복에 나설 경우 항공기ㆍ자동차ㆍ휴대폰 업체 등 상징성이 크거나 미국 농민에게 실질적 타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보잉사와 자동차회사, 농민과 같은 민감한 목표물을 노릴 개연성이 없지 않다. 다양한 품목의 공급망을 마비시키는 방안도 검토대상에 든다.
하지만 중국 역시 6년 전 희토류에 대한 수출을 규제해 전세계 제조업체들이 비명을 지르도록 만들었다가 국제시장 신뢰훼손이란 부메랑을 맞은바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다른 관심사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모든 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트럼프의 발언이다. 미중간 무역은 중국이 대규모 흑자를 보고 있다. 이는 미국이 취할 수단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반면 실질적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선 대통령의 권한이 비교적 제한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무역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매길 수 있는 수입관세는 최고 15%이고 이마저도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면 150일을 넘길 수 없다. 특정품목을 골라 고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만 과거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실행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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