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ㆍ13 총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니다. 아니 사실상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에서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부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관련 인터뷰 보기)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여의도 정치인’이 아니라 ‘길거리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정청래 전 의원 얘기다.
길거리 정치인이 된 그는 사라진 금배지의 권위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메웠다.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경찰의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 집행을 막는 데 앞장섰고, 최순실 정국에 분노한 국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이자 길거리 시위 행렬에 동참했다. 그가 현장에 있는 순간은 SNS를 통해 생중계됐다. 최순실 정국에 대한 생각과 의견도 SNS에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지난 9월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어떻게 좋은 국회의원을 감별할 수 있는지, 국회의원이 일을 잘하게 할 수 있는지, 지지하는 대통령을 당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전직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썼다.
책에서도 SNS는 핵심 소재다. 특히 ‘대통령 선거 이기는 법’에선 유권자들에게 ‘SNS 대책위원회에 힘을 모으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인 SNS 자원봉사단을 예로 들었다.
그는 최근 ‘최순실 부역자 신고센터 소장’이라는 자리를 자임하는 등 SNS 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트위터 팔로워 28만6,800여명과 페이스북 팬 5만1,900여명 등이 그의 후원자이자 제보자다. 그는 “국회 대신 SNS에서 마이크를 잡았다”며 “국민들과 만날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난 만큼,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 방향을 제시하는 게 지금의 내 임무”라고 말했다. 마포구 손혜원 의원 후원회 사무실에서 정청래 전 의원을 만났다.
-손혜원 의원 후원회장이라곤 하지만 실직자나 다름 없는데, 경제적으로 괜찮은가?
“현역 의원일 때보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아직까진 비슷하게 번다. 강연도 다니고 팟캐스트도 하니까. 책도 썼고. 강연에 불러주시고 팟캐스트 들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최근 SNS를 보면 거의 최순실 정국에 대한 포스팅이 대부분이다. 현 정국을 어떻게 보나?
“이번 사태는 측근이 중심이 된 기존의 권력형 게이트랑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이 직접적인 혐의자이자 피의자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 사건은 대통령을 수사할 수밖에 없다. 일단 수사를 먼저 하고 임기 만료 직후에 기소하면 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 스캔들 때 수사에 협조해 최대 위기를 넘겼다. 만약 당시에 수사 안 받고 버텼으면 닉슨처럼 하야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아무 힘 없는 식물 대통령이나 다름 없다. 상황만 놓고 보면 이승만 하야 때랑 비슷한 국면이다.”
-공개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다.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데 바람직한 야권의 대응책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야당이 몸 사리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탄핵 역풍을 우려하는데, 오히려 몸 사리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야당에 정치적 제안을 해서 책임을 나눠질 필요도 없다. 지금은 수습책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대통령 수사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할 때다. 아울러 최순실 덕분에 이득을 본 부역자들을 색출해 직위를 박탈하고 부당 이득을 환수하는 작업에 힘써야 한다. 탄핵, 하야, 거국 내각, 국정조사는 그 다음 얘기다. 상처받고 자존심 상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분노의 현장에 같이 있어야지 대책이나 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의 뜻에 순응하고 그들을 지켜주는 게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일이다.”
-최순실의 프라다 신발, 곰탕 등 본질과 거리가 있는 가십을 SNS에 올리는 이유는?
“SNS는 소통이다. 유머와 해학이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 사이사이에 본질을 담는다. 최순실이 갑자기 수사를 받겠다고 귀국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첫 번째는 독일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면서 현지에서 체포돼 국내에서 손 쓸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박근혜 정권에서 수사 받고 털고 가겠다는 계산이다. 정권이 교체된 후 강제 송환되면 더 피곤해지니까.”
-일각에선 지금 같은 정국에서 내년에 정권 교체가 안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언제든 선거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얘기하면 진다. 객관적으론 야당에 유리한 형세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친박의 양자와도 같은 반기문은 박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의 최대 강자는 유승민 의원이다. 그가 대선후보가 될 거라고 본다. 유 의원은 여당이지만 공천 배제 등 탄압받은 경험 때문에 야당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정권을 교체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책에서 SNS를 활용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국민과 네티즌, 민심과 넷심을 달리 본다. SNS는 더하다. ‘SNS나 하는 애들’이라며 얕잡아 본다. 잘못된 생각이다. SNS는 정치인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공간이다. 또 수십만명의 보좌진을 일거에 가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사퇴하게 만든 주민투표 때 야당과 범시민단체가 내 건 구호가 ‘나쁜 투표, 착한 거부’였다. 제안은 내가 했지만 아이디어는 페이스북 댓글로 받았다. 좋은 콘텐츠, 카피, 정책 아이디어 제안이 SNS를 통해 들어온다. 나는 2001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기사와 댓글로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따지면 SNS 경력이 16년이다. 그 동안 스스로 똑똑해졌다는 걸 느낀다. 다 SNS에서 소통한 국민들 덕분이다. 앞으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유튜브 방송도 할 생각이다.”
-책을 보니 책임편집이 백도라지씨더라. 인연이 작용한 건가?
“아니다. 출판사에서 우연히 만났다. 국회의원 시절 안전행정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어서 지난해 11월 백남기 농민 사건이 났을 때도 가장 먼저 서울대 병원에 갔다. 거기서 백도라지씨를 처음 알게 됐다. 이후에 경찰 항의 방문, 서류 작업 등에서 개인적으로 도움을 줬다. 이 책을 제안한 건 김어준씨다. 출판사도 김씨가 소개해줬다. 출판사에 갔더니 백씨가 있어서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출판사 직원이라고 했다. 개인적 인연을 떠나 이 책의 책임편집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백씨와 석 달간 함께 일했다.”
-현역 의원 때 막말 논란이 있었다.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치지 마라’고 한 게 가장 큰 사례일 텐데, ‘공갈’이 막말인가? 아름답지 못한 말일 순 있지만 엄연히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용어다. 나는 현역 의원일 때 윤리위에 제소된 적이 없다. 욕한 적도 없고, 막말한 적도 없다. ‘백남기 농민은 빨간 우의 남성이 때려 사망했다’는 발언이나 북한 핵도발에 맞서 ‘핵무장하자’는 주장이 막말이다.”
-SNS에 보면 참OO인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오늘도 참강연인이자 참저술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이런 표현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예전에 책을 냈던 출판사 사장과 술친구로 지내왔다. 그가 2~3년을 지켜보더니 내게 한 말이 ‘참겸손인’이다. 강자에게 맞서 싸우고 약자를 보호하기 때문이란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땐 국정원과 맞서 싸웠지만, 세월호 사건 땐 현장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 곁에 있는 모습 등을 보며 든 생각이라고 했다. 내가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그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팟캐스트에서 ‘참겸손인’이라고 소개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필리버스터에 나섰을 땐 ‘참방광인’이 됐다가 요즘엔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면서 ‘참방송인’이 되기도 했다.”
-책에서 정권 교체의 첫 번째 이유로 남북 관계를 꼽았다. 남북 관계를 가장 중시하는 이유?
“정치 입문의 뜻을 품은 것도 남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991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에 참여했다가 감옥에 갔을 때, 인생의 목표를 ‘분단 극복, 조국 통일’로 삼았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북 관계 악화의 끝엔 전쟁이 있다.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평화여야 한다. 남북 관계 개선은 복지와 청년문제 해결의 유일한 열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세금을 많이 내도 북유럽 같은 복지 정책을 할 수 없다. 분단 관리 비용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돈 나올 곳은 국방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해외 오지에 가서 취업하라고 할 게 아니라 북한 곳곳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서도 개성공단 같은 경제협력이 늘어나면 모자란 인력을 인민군에서 충원하면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자연스럽게 긴장관계는 완화될 수밖에 없다. 국방비를 복지 예산으로 돌리고 인구정책, 기본소득 정책 등을 강화해야 한다. 평화가 곧 돈이고, 북한은 블루오션이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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