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제외할 경우 가장 주목 받는 인사는 단연 왕치산(王岐山)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다. 시 주석의 반부패ㆍ사정 드라이브를 총괄하고 있는 그는 중국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서열은 6위지만 사실상 리커창(李克强) 총리까지 제친 실질적인 2인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런 왕 서기가 조만간 감투를 하나 더 쓰게 될 모양이다. 중국 정부가 기율위와는 별도의 감찰기구를 만들어 전체 공무원에 대한 반부패ㆍ사정작업에 나서기로 하면서다. 기율위가 당내 조직이라 당원이 아닌 공무원 단속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인데, 새 감찰기구는 국무원 산하 공안부의 협조를 받는 것은 물론 검찰ㆍ법원의 권한도 일부 위임받을 예정이어서 왕 서기는 그야말로 막강 권력자가 될 전망이다.
사실 시 주석이 집권 후 반부패ㆍ사정 드라이브에 나설 때만 해도 그러려니 하는 평이 많았다.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적 제거 수단쯤으로 본 것이다. 실제 장쩌민(江澤民)ㆍ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집권하자마자 각각 중앙무대에서 권세를 자랑하던 베이징(北京)시 시장, 상하이(上海)시 당 서기를 부패혐의로 숙청하면서 실질적인 1인자가 됐다. 시 주석이 2012년 11월 당 총서기에 오른 직후 “호랑이(고위 간부)든 파리(하위 공직자)든 부패 관료는 모두 때려잡겠다”고 공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역시 전임자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2013년부터 올해 9월까지 부패 및 기율 위반으로 처벌받은 공직자는 부부급(副部級ㆍ차관급) 이상 관료 109명을 포함해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시 주석은 최고지도부를 지낸 원로는 형사처벌하지 않는다는 오랜 묵계를 깼고, 부패 의혹에 휘말린 친누나의 출국을 금지했고, 전임자들이 손대지 못했던 군부에 메스를 들이댔고, 기율위 내부 감찰을 통해 팀장 5명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중국 국적을 가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莫言)은 “중국의 반부패ㆍ개혁 수준은 나의 상상력을 초월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물론 시 주석의 반부패ㆍ사정 드라이브를 100% 순수하게만 보기는 어렵다. 얼마 전 개최된 제18기 당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를 거치면서 그가 ‘핵심’ 칭호를 부여받은 건 결국 1 지배체제 강화를 통한 장기집권을 염두에 둔 것이란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 전체로 봐서도 우리가 주로 경험해온 민주주의의 여러 요소들이 결여돼 있고, 보편적인 인권 측면에서도 우려할 만한 요소가 상당하다.
그렇다고 시 주석의 반부패ㆍ사정 드라이브 의지가 폄하될 일은 결코 아니다. 중국은 지난 40년 가까이 개혁ㆍ개방에 따른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꽌시(關系)’를 중시하는 사회ㆍ문화적 풍토는 뇌물과 청탁이 얽히고설킨 부패 덩어리로 전락한지 오래여서 그 누구라도 더 늦기 전에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그가 2013년 3월 공식취임 직전 당 간부들과의 대화에서 “인민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지만 신뢰를 잃는 건 한순간”이라며 반부패ㆍ사정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정부가 한번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는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겐 로마제국의 집정관이었던 코넬리우스 타키투스의 이 말이 뼛속 깊이 사무칠 것 같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태ㆍ세월호 참사ㆍ정윤회 문건 파동ㆍ메르스 사태 때마다 그래도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며 한 가닥 기대를 가졌던 자신을 자책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게 그 어느 때보다 외교력이 절실한 지금, 그토록 너그러웠던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모두 잃어버린 박근혜 정부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국가적 재앙을 피하는 길, 청와대와 친박계만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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