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속에 10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구성이 독특했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엔딩에 콩트 식의 에피소드가 종종 붙었다. 요리 뒤 후식이 이어지듯 드라마의 여운을 잇는 방식이다.
지난 3일 방송된 22회가 특히 주목 받았다. 극이 끝난 뒤 방송을 탄 60여 초의 영상은 댄스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했다. 극중 기자인 이화신을 연기한 조정석은 팔을 요란하게 흔들며 춤을 췄다. 눈여겨볼 곳은 장소다. 조정석은 병원에서 유방외과 의사인 금석호(배해선)와 오 간호사(박진주)와 대열을 맞춰가며 로봇처럼 ‘각기춤’까지 선보인다. 웃음기 없이 춤을 추는 모습이 작정한 눈치다. 드라마 속 이화신은 유방암 진단을 받고 가슴 수술을 한 뒤 회복 중이었다. 환자와 간호사도 모자라 의사까지 나서 병원 복도에서 느닷없이 춤이라니. 만화 같은 엉뚱한 영상으로 극에 반전을 줘 웃음을 준 것이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춤을 추는 영상을 1분 가까이 내보내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별 영상’은 어떻게 나왔을까. 조정석과 춤을 춘 배해선(42)은 10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원래는 극 속에서 춤을 추는 걸로 대본에 나와 있었는데, 에필로그 영상으로 따로 찍은 것”이라고 뒷얘기를 들려줬다. 대본에는 이화신이 방사선 치료를 끝낸 기쁨에 금석호와 오 간호사를 오가며 흥을 돋운 뒤 세 사람이 가볍게 춤을 추는 설정이었다. 극 안에서 셋이 춤을 추면 흐름상 너무 튀어, 현장에서 논의 끝에 에필로그 영상으로 따로 찍었다는 설명이다.
배해선은 “처음엔 춤을 안 추려고 했다”며 웃었다. 의사가 병원에서 춤을 춘다는 게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배해선을 설득한 이는 박신우 PD다. 배해선은 “촬영하다 쉬는 시간에 조정석, 박진주와 내가 장난도 많이 치고 재미있게 노는 걸 보고 박 PD가 셋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원했다”며 “그럼 한 번 해 볼까란 생각에 춤을 추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배해선을 비롯해 조정석, 박진주가 춤을 추는 데 익숙한 뮤지컬 배우라는 점도 ‘모험’의 큰 계기가 됐다.
일은 커졌다. 한 줄로 서서는 오토바이를 타듯 차례로 ‘회오리춤’까지 준비했다. 1980년대 후반 인기를 누렸던 그룹 소방차의 안무 스타일을 콘셉트로 잡았다. 복고 느낌으로 웃음을 주고 싶었단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배해선이 에필로그 촬영이 시작되자 분위기를 띄웠다. 그는 “아 유 파티 타임?”이라며 흥을 돋기도 했다. 배우들끼리 서로 춤추는 걸 보며 웃다가 NG도 여러 번 냈단다. 배해선은 “셋이 각자 춤을 추는 구성도 있었다”며 웃었다. 배해선은 2000년 ‘페임’을 시작으로 ‘맘마미아’ ‘에비타’ ‘시카고’ 등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무대 위에서 숱하게 춤을 춰왔지만, ‘질투의 화신’에서처럼 코믹 댄스를 춘 것은 처음이다. “처음엔 너무 창피했는데, 반응이 좋으니 다행이에요, 하하하.”
배해선은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고집 세고 남성적인 이화신의 기를 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 극에 활력을 줬다.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린 이화신을 “할머니”라고 부르고, 그를 부를 때 말꼬리를 살짝 올려 재미를 준 설정이 배해선의 아이디어다. 그는 “요리연구가 이혜정의 말투를 활용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신뢰를 주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혜정의 말 톤이 인상적이었다고.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그의 연기에 네티즌은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 등에 ‘여의사 분 연기 감칠맛 나네요’(asl*****, tjdd*****)등의 글을 올려 관심을 보였다. 배해선은 “처음엔 카메오로 1~2회만 나오는 줄 알았다”며 “작가와 감독이 캐릭터의 비중을 살려줬다”고 했다.
‘질투의 화신’은 그에게 특별한 드라마였다. 주요 배경인 유방외과도 낯설지 않았다. 배해선은 “나도 관련 치료 경험이 있고, 꾸준히 정기점검을 받고 있다”며 “드라마를 보고 유방암 검진 받으러 갔다가 초기에 발견했다는 분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의미를 뒀다. 배해선은 조정석이 뉴스에서 병력을 털어놓을 때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쏟았다.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었고, 코맹맹이가 된 채로” 조정석과 다음 장면을 촬영해 민망했단다.
‘춤’으로 주목 받은 배해선은 작별 인사도 춤으로 했다. 배해선은 이날 방송된 마지막 회(24회) 이화신과 표나리(공효진)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하다 또 춤을 췄다. 신랑을 비롯해 하객으로 온 최동기(정상훈), 오 간호사와 싸이의 ‘연예인’을 부르며 결혼식장을 축제로 만든 뒤 시청자들과 작별을 고했다. 한 편의 뮤지컬 같은 퇴장이다.
“같이 춤을 췄던 네 배우가 모두 뮤지컬 배우이고, 같은 학교(서울예대) 동문이라 더 뜻 깊었어요. (박)진주와는 아침 첫 촬영 때도 노래 틀어놓고 즐기면서 촬영했는데, 이제 끝이라니 아쉽네요. 전작(드라마 ‘용팔이’·2015)에서 간호사 역을 맡은 뒤 이번 드라마에서 의사가 됐는데, 다음엔 어떤 역을 맡을 지 지켜봐 주세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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