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ㆍ복장 단속, 벌점 매기는 등
교사 생활지도 권한 학생에 위임
실제 법적근거나 유래는 불분명
수업 중 교사 앞에서 소지품 검사
서울시교육청, 학교에 시정 권고
9월 새 학기 수업이 한창이던 서울 강북의 한 사립고등학교 1학년 교실 앞 문이 벌컥 열렸다. 학생 10여 명이 버티고 서 있었다. 수업 중이던 교사도 있었지만 이들은 거침없이 들어와 학생들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불시에 검사해야 학생들이 문제가 될 물건을 숨기지 못한다”고 밝힌 이들은 선도부 학생들이다.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사실이 지난달 학생인권침해 사항으로 접수되자, 학생 동의 없는 그리고 선도부 학생에게 위임하는 소지품 검사 관행을 시정하라고 해당 학교에 권고했다.
완장을 차고 교문 앞에 도열해 날카롭게 동급생들을 쏘아보는 선도부, 역사 속에 사라졌을 법한 이들의 존재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전체를 단속하기엔 교사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권한을 위임하는 식인데, 학생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학교 폭력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1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사립중서부지회가 펴낸 ‘2016년 학교실태백서’에 따르면, 중부와 서부교육지원청 소속 사립 중고등학교 55개교 가운데 25개교(45.5%)가 학생 선도부를 동원해 교문 지도를 하고 있다. 교문에 서서 학생의 두발과 복장을 단속하고 벌점을 주는 게 교문 지도다.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관계자는 “시교육청 차원에서 따로 현황을 집계하진 않지만 사립은 대부분 선도부를 운영하고 있고 공립 학교도 ‘학생생활지도부’ 등 이름만 바꿔 선도부를 두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선도부의 폐해는 이미 무시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학생 사이에 ‘권력형 비리’까지 일어날 정도다. 서울 영등포구 한 공립고등학교 교사는 “이전 학교에서는 선도부 학생들이 친한 애들은 봐주고, 간식이나 학용품을 사다 주는 학생의 적발 사실을 지워줘 큰 문제로 비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선도부 학생들도 단속에 반발하는 상급 학생들로부터 ‘어디 두고 보자’는 식의 학교 폭력 위협에 시달린다. 2014년 경남 진주외고에서는 기숙사 자치위원 학생이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후배를 폭행하다가 1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학교 안 ‘작은 권력집단’으로 군림하는 선도부는 사실 그 유래도, 법적인 활동 근거도 불분명하다. 일각에서는 학교를 황국신민화 수단으로 삼았던 일제 강점기 때 학생끼리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했던 것이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근대 초기 사료를 바탕으로 100년 전 학교 모습을 분석한 책 ‘학교의 탄생’ 저자 이승원(인천대 강사)씨는 “1890년대 이화학당(현재 이화여대)에서 학생의 흡연과 음주를 엄격히 단속했고 1931년 잡지에서도 학생의 학내 풍기문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며 “학생의 근대적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선도부, 기율부, 규율부 등을 활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참여했던 조영선 교사는 “선도부는 학생자치위원회에 소속돼 있지만 생활지도 교사 관리 아래 교사 권한을 편법으로 위임 받아 다른 학생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초중등교육법에도 학생이 같은 학생을 지도하거나 벌점을 줄 수 있도록 교사의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교육 현장에서는 관습적인 규제가 학교 질서 유지와 교육에 정말 필요한 일이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 장충고 교사 오형민씨는 “두발과 복장 등 단속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을 통제하고 학교 스스로 위안을 얻는 데 불과하다”며 “교육 효과가 불분명한 과도한 규제 때문에 학생들이 위축되고 학교에 대한 반감만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 신방학초 교사 홍의표씨는 “1980년대에도 교복과 두발 자율화 정책을 폈던 적이 있지만 학교가 망가지지 않았다”며 “학생을 통제하는 일에 같은 학생을 이용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학기 초 ‘선도부 폐지’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 보냈다. 실제 교문 지도를 프리허그로 바꾼 인천 서운고 교문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곰돌이 탈을 쓴 친구에게 와락 안기며 말했다. “예전엔 트집 잡힐까 땅만 보고 다녔는데 이제 반갑게 웃으며 학교에 들어올 수 있어요.” 이 변화를 우리는 눈 여겨봐야 한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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