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새벽 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뉴욕의 트럼프타워 앞에는 분노에 찬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약 5,000명에 달하는 뉴욕 시민들은 이날 트럼프타워를 빼곡히 둘러싸고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오늘은 아니다”(Not my president. Not today)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선결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반(反) 트럼프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는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 지역인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은 물론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한 텍사스와 펜실베이니아 등 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시위대는 여성혐오와 인종차별 등 막말과 기행을 일삼아 온 트럼프를 미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타워 시위에 참가한 닉 파워스는 “트럼프 당선결과를 보자마자 느낀 공포를 털어내려고 여기 왔다”고 CNN에 말했다. 10일 트럼프 타워 앞에서 1인 항의시위를 벌인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트위터에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에 살고 싶다”며 “그(트럼프)는 함부로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적었다.
일부 분노한 시민들은 성조기를 불태우고 도로를 점거하는 등 과격 행동도 불사하면서 반 트럼프 시위가 더욱 격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시내 중심가로 몰려나온 약 200명의 시민들이 트럼프 모형을 불태웠고,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에서는 약 300명이 도로 한가운데서 연좌농성을 벌이며 성조기를 태웠다. 메인주에서는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트럼프 반대, 백인우월주의(KKK) 반대, 파시즘 반대”를 외치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NotMyPresident)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50만개나 올라와 거센 반 트럼프 정서를 보여줬다. 특히 클린턴 득표율이 우세했던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캘리포니아와 탈퇴(exit)의 합성어 '칼렉시트'(#Calexit)을 해시태그로 달기도 했다. ABC방송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미국 무슬림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슬람단체들은 미국 내 무슬림들에게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택한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전세계 국가들에서도 경계와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미국과 관계개선을 모색 중인 쿠바는 9일 군사훈련인 ‘바스티온 2016’을 16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혀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트럼프가 오바마 행정부의 대 쿠바 유화 정책을 되돌릴 것을 막기 위해 군사행동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이다. 멕시코 정부는 이날 트럼프 당선인이 내건 국경장벽의 설치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영국의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의 모하메드 아도우 대변인은 이날 파리기후변화협정을 백지화하려는 트럼프를 겨냥해 “한 사람(트럼프)의 반대 때문에 전 세계가 기후변화라는 재앙을 맞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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