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 증액... 사드 구입도 압박 가능성
신고립주의로 안보현안 불투명
“트럼프에게 북핵은 강 건너 불”
방위비 전액 부담 요구할 수도
거부 땐 미군 철수 위협 우려
FTA 재협상 카드로 쓸 수도
한일 안보협력도 차질 빚을 듯
우리 정부를 비롯한 동맹국들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줄곧 제기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한미동맹 관계가 일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방위비분담금 증액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배치와 확장억제 공약, 한미일 삼각안보 협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전시작전권 전환 등 한미 안보 현안 모두가 불투명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국의 안보는 자국이 책임져라’로 요약되는 그의 ‘미국 우선의 신고립주의’ 성향은 2차 대전 후 대량살상무기 비확산과 민주주의 확산 등을 위해 ‘세계 경찰’을 자임했던 미국의 안보 노선과는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당장 미 대선 기간 한반도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쏟아낸 발언은 대부분 안보 비용 문제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은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자신들의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며 줄기차게 시비를 걸었던 그는 지난 9월 대선 1차TV 토론에서도 독일 한국 일본 등을 거론하며 “그들이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 비춰 트럼프 행정부의 1차 타깃은 방위비분담금 증액이 될 게 분명하다. 2014년 체결된 제9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 따라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9,400여억원이다. 주한미군 유지 비용의 50%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나 지난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50%라고? 100% 부담은 왜 안 되냐”고 반문했다. 5년 기한의 분담금 협정이 2018년 만료됨에 따라, 새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미국이 전액 부담 카드까지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분담금 증액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도 꺼낼 수 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3월 뉴욕타임즈(NYT)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럴 의향이 있다”며 “우리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흔들며 미국에 유리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트럼트 당선인이 기본적으로 “더 이상 미국이 다른 나라 안보를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실제 정책으로 펼친다면 한미 안보 현안 자체가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된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그에겐 북핵 문제도 미국에게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강 건너 불’에 불과하다”며 “여차하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수 있고, 한미일 삼각안보 협력은 아예 관심 사안 자체가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사드 역시도 한국 안보에 필요하다면 한국이 직접 구입하라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미국의 독촉 아래 진행됐던 한일 안보 협력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그간 노골적으로 클린턴 후보를 지지해왔던 아베 일본 정부도 우리 보다 더 큰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며 “미일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입장이 외교 안보 분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미 공화당 소속 외교 전문가 50명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반대 선언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외교안보 인맥이 부족한 트럼프가 실제 대통령에 당선되면 결국엔 워싱턴의 관료나 싱크탱크에 의존해 기존 미국의 안보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트럼프 당선으로 우리 안보를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공화당과 의회가 이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가 독단적 결정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부원장은 “트럼프가 참모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리더 유형이다”며 “누가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이 될지도 예측불허긴 하지만, 누가 되더라도 대통령에게 그다지 영향을 못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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