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틱ㆍ흑인 클린턴에 몰표…백인은 ‘상실감’ 공략한 트럼프로 러스트벨트 쓸어 담으며 대승
인종 앞에 성별ㆍ연령은 변수 안돼…민주당, 저소득층 지지 얻었지만 무당파가 트럼프 선택
미 국민들은 8일(현지시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 표를 몰아주며 대이변을 연출해냈다. 미 언론 대다수는 대선 전날까지만 해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개표 결과 나타난 표심은 딴판이었다. 트럼프는 이날 3대 격전지로 꼽혔던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중 세 곳을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하며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대선 표심에 나타난 트럼프 승리의 주요 원동력은 ‘백인들의 결집’이었다. 이날 미국 CNN방송이 실시한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히스패닉과 흑인 등 유색인종이 클린턴에게 몰표를 한 반면 백인들은 남녀 구분 없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정황이 뚜렷했다. 미국 내 유색인종 급증으로 상대적으로 소수인종으로 밀리는 백인들의 상실감을 공략한 트럼프의 전략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러스트벨트 쓸어담은 트럼프
트럼프는 이날 총 선거인단 67명이 걸린 3대 대형 경합주인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는 물론 노스캐롤라이나 등 러스트벨트(낙후된 북부 및 중서부 제조업지대)에서도 연달아 승전보를 울리면서 승리의 드라마를 썼다. 1960년 이후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3개주 가운데 2개 이상 이기지 못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다. 트럼프는 이날 이들 3개주 모두에서 승리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변의 시작은 플로리다였다.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대형주인 플로리다를 잡기 위해 트럼프와 클린턴은 대선 전날까지 치열한 맞불 유세를 벌였다. 플로리다 사전투표에 참가한 히스패닉 유권자가 2012년 대선 당시보다 훨씬 늘어난 걸로 집계되면서 클린턴 캠프는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플로리다 개표 결과 트럼프는 클린턴을 약 2%포인트 차이로 승리하면서 전세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이후 관심은 ‘대선 풍향계’인 오하이오로 쏠렸다. 오하이오는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이 승리한 곳이다. 하지만 백인 인구가 80%가 넘는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의 표심은 이번에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고, 이어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도 차지하며 사실상 대선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트럼프가 핵심 경합주는 물론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등 러스트벨트에서 완승한 데는 세계화와 이주민 증가로 일자리 상실의 직격탄을 맞은 백인들의 불만이 표심으로 분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버몬트)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가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러스트벨트에 거주하는 미국 중산층의 붕괴에 있었다.
반면 클린턴은 주요 경합주 10곳 중 승리한 곳이 버지니아와 콜로라도, 네바다 등 3개주 에 불과하면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을 지키는데 그쳤다. 특히 클린턴은 선거인단 15명이 걸린 대형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세를 벌이며 막판 사력을 다했다. 클린턴 지지층인 대학교육을 받고 일정한 직업이 있는 백인들과 흑인들이 많이 유입되는 지역으로 분류돼서다. 하지만 이곳에서마저 트럼프의 동부 농촌 지역 등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유세에 밀려 공화당에 승리를 내줬다.
백인 대 유색 인종의 대결
이번 대선은 사실상 인종 간 대결이었다. 이날 발표된 CNN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선에서 백인 유권자 10명 중 6명(58%)은 트럼프에게 투표했고 반대로 히스패닉과 흑인, 아시아인 등 유색인종 10명 중 7명(74%)은 클린턴에게 표를 몰아줬다. 특히 흑인의 클린턴 지지는 96%를 기록한 2008년 대선 당시보다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클린턴 88%대 트럼프 8%로 여전히 압도적인 격차를 드러냈다.
특히 인종을 중심으로 보면 성별과 연령 등은 전혀 대선에서 변수가 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인은 전 연령층과 모든 성별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클린턴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유색인종은 기준집단을 민족, 성별, 연령층 등으로 아무리 세분화해서 살펴도 클린턴 지지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결국 인종 별 투표가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연령 별로는 40세를 기준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갈렸다. 18세부터 39세의 젊은 층은 클린턴에게 힘을 실어주며 ‘밀레니얼 세대(1977년 이후 출생)는 민주당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반면 전체 유권자의 65%에 해당하는 거대계층인 40세 이상 장년층과 노년층에서는 트럼프 지지율이 더 높았다.
남성 투표자 중에서는 트럼프 지지가 53%로 41%인 클린턴 득표율보다 많았고, 여성 투표자는 클린턴 54%, 트럼프 42%로 정반대의 투표 성향을 보였다. 여성 혐오 발언을 이어갔던 트럼프에 대한 반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학력별로는 학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클린턴, 대학 수료 이하 학력자는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계층별, 이념별 투표 대결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2008년 오바마 대통령에게 60%의 지지를 보냈던 저소득층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민주당 후보를 배신하지 않았다. 연간 5만 달러(5,740만원) 미만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계층은 52%가 클린턴을 지지했다고 답했다. 반면 5만 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에서는 트럼프 지지가 49%로 클린턴보다 2%포인트 앞섰다.
군인과 종교 별 투표도 전통적인 성향을 따라갔다. 군인과 퇴역 군인들은 5명 중 3명 꼴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단에서도 공화당 지지가 두드러졌다. 응답자의 과반에 해당하는 개신교도들은 58%가 트럼프를 찍었다고 밝혔고, 두 번째로 큰 집단인 가톨릭교도 역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답변이 52%였다. 그 외 무교, 유대교, 기타 종교 신자들은 대체로 클린턴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나 보수로 이념적 선호가 뚜렷한 집단에서는 투표 결과가 더욱 극명하게 갈렸다.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은 클린턴에,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트럼프에 각각 84%, 81%의 표를 몰아줬다. 응답자의 39%를 차지하는 중도 성향 집단은 클린턴 지지 52%, 트럼프 지지 41%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무당파 유권자들도 선거일에는 양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데 트럼프를 선택한 비율이 48%로 클린턴보다 6%포인트 많았다.
김현우 기자 강유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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