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를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8일(현지시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과 통상에 메가톤급 폭풍이 몰려올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집권 후 한미 FTA 무효화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극단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당장 실행하진 않더라도 반덤핑이나 상계 관세 같은 무역제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큰 국내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후보 당선으로 우리나라의 통상 정책에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변수는 한미 FTA 재협상 여부다. 트럼프는 후보자 시절 지속적으로 일자리 감소, 제조업 약화 등 미국이 처한 경제 위기를 한국 등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 탓으로 돌려왔다. 특히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들을 직접 거론한 뒤 “한국이 미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어가고 있지만 미국이 돌려받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한미 FTA는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트럼프가 공약대로 집권 후 바로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선다면 한국 경제에는 또 하나의 대형 악재와 불확실성이 덮치게 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한미 FTA 체결 후 자동차, 정보통신기기 등의 분야에서 대미 수출을 꾸준히 늘려왔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협정 양허(관세 협정을 맺은 나라끼리 최혜국 대우를 해 관세율을 인하하는 것)가 정지될 시 2017~2021년 5년간 우리나라의 수출 손실이 269억 달러(약 3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같은 기간 일자리도 24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양허정지로 인해 타격이 가장 큰 산업은 자동차 산업으로 수출 손실액이 무려 133억달러로 추산됐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수출 손실액도 3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미 FTA 전면 재협상에 들어갈 경우 양허정지 또는 협정 적용이 전면 중단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정부는 자동차, 기계, 정보통신기술(ICT) 등 타격이 큰 산업의 수출 손실을 막기 위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산업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가 의회 등의 반대로 한미 FTA 탈퇴 등을 당장 시행하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의 극단적 보호무역 조치가 무역 전쟁 등을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은 상태다. 미국정책재단(NFAP)도 지난 5월 발표한 ‘트럼프 관세’(Trump Tariff) 관련 보고서에서 중국, 일본에 대해 45%, 멕시코에 3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모든 미국 가정에 연간 2,220달러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들 국가에 관세를 부과해도 결국 수입선이 다른 나라로 전환돼 미국 무역수지 개선과 국내 산업 보호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도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한ㆍ미 FTA는 미국의 수출에 48억달러 증가 효과를 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ㆍ발효한 13건의 FTA 가운데 두 번째로 수출 증가효과가 큰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미 FTA 발효로 미국의 대 한국 자동차 수출액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200%나 급증하고, 지난해 대 한국 서비스 수출도 2012년 3월 이후 35% 늘어난 60억 달러로 집계됐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로 미국 경제만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잘못된 시각이란 이야기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자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등에 대해 한미 FTA 재협상 보다는 일단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와 같은 공격적 통상 정책을 도입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FTA 효과는 미국도 인정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도 이를 쉽게 깨지는 못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비, 수출 품목과 수출지역 다변화 등 근본적인 수출전략을 재점검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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