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고양이들이 꼬박꼬박 고등학교 수업에 참석해 학생증까지 받는 등 길고양이가 청소년들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사례가 해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더는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됐다. 경기 남양주 마석고등학교의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 ‘랑이랑’ 학생들은 길고양이 출신 ‘고여사’와 함께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학교와 학생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주거지와 공업단지 사이에 위치한 마석고는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들이 자주 눈에 띄는 데, 교사들과 학생들은 이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거나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만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며 함께 돌봄 활동을 하게 됐고, 올해부터는 정식으로 학교에 동아리 등록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길고양이 돕기에 나서고 있다.
담당을 정해 길고양이를 돌보는 인원은 17명, 여기에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반 12명과 10명의 서포터즈, 권지연(51) 지도교사가 힘을 합쳐 ‘랑이랑’을 꾸려나가고 있다. 권 교사는 “너랑 나랑이라는 의미와 고양이랑 나랑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담아 동아리 이름을 정했다”며 “서로 다른 생명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함께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랑이랑의 활동은 길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랑이랑을 이끄는 이채원(17)양은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를 3D 프린터로 출력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에 더해 바자회를 열고, 체육대회 때 솜사탕을 판매해 고양이 두 마리의 중성화 수술과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랑이랑의 활동은 길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다른 학생들의 동의와 교사, 학교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양이가 나올 때에는 랑이랑 부원들이 따라다니며 길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학생들을 안심시켜 이들의 동의를 끌어 냈다.
학교 특수반 학생들은 목공활동으로 고양이들에게 집을 지어주었고 제과제빵과 바리스타 수업시간에 만든 쿠키와 케이크, 음료를 판매해 길고양이를 위한 수익금에 기부했다. 권 교사는 “장애학생들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고 보호를 받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고양이를 돕기에 나서면서 학생들의 자존감도 향상됐다”고 전했다.
모든 길고양이가 다 소중하지만 학생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주인공 고양이가 있다. 학교에서 여섯 마리를 출산한 고양이 ‘고여사’이다. 학생들은 고여사의 출산과 여섯 마리 새끼 고양이들의 입양처를 도우면서 더욱 사이가 돈독해졌다. 랑이랑 서포터즈로 활동중인 학생회장 김예영(17)양은 “고여사는 우리들의 말벗이 되고 위안을 준다”며 “고여사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모이고, 장애학생과 일반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대화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준혁(17)군은 “진로를 정하기가 어려웠는데 고여사를 만나고 난 뒤 반려동물 관련학과를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한편 고여사와 또 다른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평생 가족으로 품어줄 입양처를 찾고 있다. 권 교사는 “작은 고양이로 인해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대화가 늘었다”며 “앞으로도 서로 믿고 도와주면서 길고양이 돌봄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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