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점점 더 남녀가 서로 닮아가고 있다. 하긴 남녀차이라야 겨우 X, Y 염색체상의 몇 개 유전자 차이인걸 뭐. 그 중에서도 성염색체는 X 염색체가 주가 된다. 어찌 보면 X유전자의 10분의 1만 보유한 Y 염색체를 가진 남자가 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미토콘드리아 내의 염색체는 난자를 통해서만 대대로 전해진다. 때문에 인류의 조상을 찾으려면 현재 사용하는 이 ‘미토콘드리아법’으로는 결국 최초의 여자(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누구냐 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유전자적 차이를 떠나 외형상으로 남녀 간의 차이는 아직까지는 현격하다. 그럼 동물들은 암수 간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일단 대개의 암수 형태는 사람과 비슷하다. 소위 ‘사나이 대 아가씨’처럼 골격이 크고 힘이 센 것이 수컷이고, 골격이 작고 힘이 약한 쪽이 대개 암컷이다. 하지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넓게 보면 그 차이가 현격히 줄어든다. 새들만 봐도 기러기, 독수리, 두루미, 황새 종류들은 육안으로 거의 구별을 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암수 간에는 생리적인 일부 특성을 제외하곤 사냥, 집 짓기 등의 거의 모든 활동에서 서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 마리 밖에 없는 표범을 마취할 일이 생겼다. 그 과정 중에 우리가 그 동안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우린 이 표범이 동물 개체카드에 수컷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런 줄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자세히 살펴보니 암컷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사육사들은 이 표범의 성별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지만 확인하기가 어려워 이번 기회에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주 관찰 포인트는 꼬리 밑에 고환(정낭)의 유무다. 수컷 표범이 어릴 때는 고환이 거의 도드라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류의 실수를 범 할 수도 있다.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 사자나 호랑이처럼 몸집이 커서 체격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면 몰라도 체격이 작은 표범부터 고양이들까지는 거의 동일한 위치에 생식기가 있고 볼일을 보는 것도 비슷해 외모만으로는 암수를 판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른바 전문가들마저 그렇다. 이들은 암수 모두 독립적으로 살아가니 굳이 암수가 외형적으로 구분 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물고기들 역시 몸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암수 구별이 힘들다. 심지어 일부 돔 종류는 암컷들만 존재한다. 번식철이 되면 한두 마리가 정도가 수컷이 되는 ‘자웅동체어’이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물고기 중에는(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흰동가리 역시도) 이런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가시고기나 해마는 기존의 관념적인 남녀구실이 완전히 바뀐다. 즉 양육의 책임은 전적으로 수컷이 진다. 양서류인 개구리들은 물론 알을 낳아만 놓고 돌보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를 안쓰럽게 여긴 몇몇 수컷들은 아예 알 보따리를 입 속이나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
곤충 단계까지 가서는 그 동안 우리가 흔히 알고 지내던 남녀의 외모차이까지 완벽하게 반전된다. 거미나 사마귀의 암컷 크기는 수컷의 서너 배에 달한다. 대부부의 수컷들이 암컷보다 훨씬 작고 모기처럼 흡혈 같은 위험한 일을 하는 것들도 모두 암컷이다. 수컷 개미들은 여왕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일개미와 병정개미는 모두 암컷이다.

포유류에서도 드물지만 암컷이 수컷을 완전히 지배하는 경우가 있다. 코끼리와 하이에나 무리가 그렇다. 무리동물인 사자, 미어캣, 늑대 사회에서도 복잡하지만 모계중심의 ‘아마조네스(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전사로만 이루어진 전설적인 부족)’가 엿보인다.
자! 이런 걸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이른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외모와 알량한 힘 차이만을 기준으로 남녀를 차별하거나 다른 성별을 혐오해도 괜찮은 걸까. 이런 소모적 논쟁은 동물들이 보기엔 정말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진료팀장,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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