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날’이었다.
정조국(32ㆍ광주)은 8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2016 프로축구 K리그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뒤 수상 소감을 말하다가 목이 멘 듯 울컥했다. 이미 베스트11 공격수 부문과 득점왕을 받아 3관왕에 오른 그는 “바로 전(베스트11 공격수 부문 시상)에 준비한 소감을 다 말해서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웃으면서도 “이렇게 큰 상을 받게 하려고 시련을 주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조국은 작년 말 큰 결심을 했다. 2003년부터 몸담았던 명문 FC서울을 떠나 지방의 시민구단 광주FC로 이적했다. 2003년 안양LG(FC서울 전신)에 입단해 K리그 신인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프로 무대에 입성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 득점 감각과 슛을 때리는 임팩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은 잊고 싶은 한 해였다. 11경기에 출전했는데 10경기가 교체였다. 후반기에는 아예 벤치만 달궜다. 다섯 살 아들 태하가 “아빠는 왜 안 뛰어”라고 했을 때 그는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감을 맛봤다. 그 때 남기일(42) 광주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조국아, 광주에서 다시 뛰자.”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하지만 일단 경기에 출전해야겠다는 생각에 기꺼이 광주행 KTX에 몸을 실었다. 광주에 숙소를 따로 구해 탤런트 아내 김성은(33), 아들 태하 군과도 시즌 내내 떨어져 살았다. 연봉도 절반가량 가까이 깎였다. 그는 광주에서 재기에 실패하면 축구 인생은 끝이라는 마음으로 독하게 훈련에 매달렸다. 땀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정조국은 올 시즌 20골을 터뜨리며 부활에 성공했다. 그의 활약 덕에 광주도 시즌 8위로 일찌감치 2부리그 강등권에서 벗어났다. 한국 프로축구 사상 우승을 못한 팀에서 MVP가 배출된 건 1999년(수원 우승, MVP 부산 안정환)과 2010년(서울 우승, MVP 제주 김은중), 2013년(포항 우승, MVP 울산 김신욱) 딱 세 번이다. 하지만 부산과 제주, 울산 모두 준우승 팀이었다. 우승, 준우승이 아닌 팀에서 MVP가 나온 건 정조국이 처음이다. 이날 김성은 씨가 직접 득점왕 시상자로 나서 의미가 남달랐다. 정조국은 아내를 꼭 안아준 뒤 “태하야, 아빠 상 탔다”고 활짝 웃었다. 아빠는 왜 안 뛰느냐고 했던 태하 군도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올 시즌 8골을 기록하며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미드필더 안현범(22)의 수상 소감도 남달랐다. 영플레이어는 클래식 선수 중 만 23세 이하, 국내외 프로 3년 차 이내 선수에게 주는 신인왕 성격의 상이다. 안현범은 “3년 전 모텔에서 접시를 닦을 때가 엊그제 같다. 나도 몇 년 뒤에는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맛있는 밥보다 더 맛있는 상을 받게 됐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두 살 위 누나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부평고를 졸업하고 동국대에 진학한 뒤에는 모텔 아르바이트로 누나의 생활비를 보탰다. 작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로 옮겼지만 지난 5월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 때도 누나가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안현범은 “누나가 저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 저에게는 엄마 같은 누나다. 그래서 더 고맙다”고 했다. 그는 상금 500만원을 소아암 환자들에 기부할 생각이다.
감독상은 기적의 역전 우승을 일군 황선홍(48) 서울 감독에게 돌아갔다. 염기훈(33ㆍ수원삼성)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도움왕을 받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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