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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예견 소설로 화제… “출판사 5곳 퇴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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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예견 소설로 화제… “출판사 5곳 퇴짜”

입력
2016.11.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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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혜주'를 쓴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부패한 권력의 말로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소설 '혜주'를 쓴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부패한 권력의 말로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최순실 게이트’를 예견한 듯한 내용으로 최근 관심을 받는 소설이 있다. 올 초 ‘정빈’이라는 필명의 작가가 펴낸 ‘혜주’로 조선 중기 갑작스레 부모를 잃고 여왕의 자리에 오른 가상의 인물 혜주가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통치 끝에 즉위 4년 만에 왕좌에서 쫓겨난다는 내용이다.

1월 1일 출간됐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이 확산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정빈은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정운현(57)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혜주’ 때문에 만든 필명이다. 정씨는 3일 본보 편집국에서 “지인들이 기자 출신에 친일파 관련 근현대사를 주로 써온 내가 본명으로 책을 내면 독자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해 필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한 달도 채 안 걸려 쓴 책이지만 출판이 쉽지는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빗대어 표현한 대목이 많아서였다. 그는 “출판사 다섯 군데에 보냈지만 ‘뒷감당을 못 할 것 같다’며 난색을 보였다”고 했다. ‘혜주’는 경남도민일보 산하 출판사인 피플파워가 펴냈다.

‘혜주’에는 박근혜 정권에 관한 사실과 소문, 의혹 등이 픽션의 형식으로 뒤섞여 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고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왕위에 오른 공주는 비선실세에 휘둘리며 국정을 그르친다. 물난리가 나서 백성들이 죽어갈 때 젊은 승려와 밀회를 즐기던 혜주는 100여명이 수몰돼 죽었다는 말에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라고 도리어 호통을 친다. 전염병이 돌아 백성들이 죽어가도 여왕은 신하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 급급할 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여왕을 비판하는 벽보를 쓴 이의 혀를 자르고 상소문을 쓴 유생의 목을 베어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나향욱 전 교육부 국장의 발언을 예언한 듯 여왕의 측근이 ‘백성들은 마구간 누렁소나 뒷간의 똥돼지들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다.

정씨는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독선, 불통, 민주주의의 퇴보를 보면서 경종을 울리고 싶어 ‘혜주’를 쓰게 됐다”고 했다. “책을 쓸 때도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정윤회의 아내란 것만 알았을 뿐 이렇게 국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될 걸 미리 내다봤을 만큼 혜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박근혜 정권의 앞날을 예측하려고 했던 것도 아닙니다. 민심을 받들지 않는 권력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뿐이죠. 고도의 분석력이 있는 정치평론가가 아니라도 건강한 상식으로 볼 때 물이 절벽에 이르면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씨는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지만 소설가로서는 신인이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서울신문과 오마이뉴스를 거친 그는 1980년대 후반 친일파 연구로 유명한 임종국 선생을 알게 된 뒤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만 스무권이 넘는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남북관계 개선과 한일관계 정상화, 동북아 평화 등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걸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이뤄보고 싶어서”였다. 2014년 펴낸 ‘작전명 녹두’가 첫 번째 소설이고 ‘혜주’가 두 번째다. 그는 “‘혜주’를 통해 부패한 권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독자들이 깨우쳤으면 좋겠다”며 “다음에는 친일파 청산을 소설로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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