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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순실의 나라입니까"…청년들 ‘분노’담아 ‘사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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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순실의 나라입니까"…청년들 ‘분노’담아 ‘사죄’ 외쳤다

입력
2016.11.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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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ㆍ청년단체 시국선언문에 자주 등장한 키워드를 단어구름 형태로 표현했다. 글자 크기가 크고 색깔이 진할수록 많이 언급된 단어이다. 숫자는 선언문에 사용된 횟수다.
대학ㆍ청년단체 시국선언문에 자주 등장한 키워드를 단어구름 형태로 표현했다. 글자 크기가 크고 색깔이 진할수록 많이 언급된 단어이다. 숫자는 선언문에 사용된 횟수다.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입니까?”

지난달 26일 이화여대 학생들은 ‘최순실의 나라’가 된 한국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슬로건인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비꼰 청년 시국선언의 서막이었다. 이후 봇물 터지듯 대학생과 청년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현재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은 120여곳.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당시 전국 60개 대학이 연합시국선언을 한 후 최대 규모다.

청년세대의 시국선언에는 어떤 문제의식과 고민이 녹아 있을까. 한국일보가 7일 각 대학과 청년단체ㆍ모임이 발표한 시국선언문 100개를 분석한 결과, 박근혜, 국민 등 비판 대상과 주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분노(460회), 사죄(438회)였다. 특히 분노는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히 와 닿은 감정이기도 하다.

분노는 물론 박 대통령을 향해 있다. 그러나 이 분노가 커진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547회) 최순실(411회) 다음으로 빈번히 나온 이름, 정유라(297회)가 열쇠다. “최순실의 자녀를 위해 청와대는 입시 정보를 유출하고 대학은 입시전형을 새로 만들었으며 정유라는 출결 과제와 상관없이 학점을 이수했다”(인천대) “최순실은 입시 지옥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학생을 비웃듯 교수를 압박해 학점을 강탈했다”(부산청년학생) 등 비선실세 자녀가 받은 특혜(296회)를 꾸짖는 목소리는 어느 선언문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서 시국선언을 열고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총학생회는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 했다. 뉴스1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서 시국선언을 열고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총학생회는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 했다. 뉴스1

희망 없이 부조리만 가득한 이 땅을 지칭하는 ‘헬조선(지옥 같은 대한민국ㆍ243회)’도 자주 등장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하라는 누군가(정유라)의 말처럼 이 사회의 능력은 태어나기 전의 수저 싸움(제주대)”임을 절절히 깨달았다는 자조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대학에 들어가 매일 아침 지옥철로 통학하고 밤새 과제에 시달리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한양대)를 하고 “구의역에서 한 끼를 컵라면으로 때울 수 밖에 없던 비정규직 청년이 죽음을 맞이한”(단국대) 현실에서 이들은 정의(247회)가 사라졌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은 박탈감(242회)으로 귀결된다.

국정농단(370회)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노력(298회)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시스템이 붕괴된 데 대한 반발로 차용된 키워드일 뿐이다. 국민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 달라고 선출한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358회)해 불공정(289회)한 구조를 재생산했다는 것이 청년들의 판단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부러 시급이 높은 새벽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다는 대학생 조경진(22)씨는 “쪽잠을 자고 피곤한 몸으로 학교에 가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시작은 이랬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알고 보니 ‘개천의 용’은 판타지였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과거 권력형 비리가 드러나도 청년들은 ‘그들만의 문제’라며 심드렁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다르다”며 “정권의 부정부패가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고 진단했다.

청년들의 바람이 그저 ‘평범한 삶’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우린 학교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에 다니며 연인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평범함을 바랐지만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자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인천청년 시국선언) “아이들과 노인들이 여유롭고 청년들이 꿈을 키워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너와나의 시국선언)고 말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 세례를 받고 자라난 8090 세대에게 정의와 평등은 당연한 일상이었으나 그 근간이 흔들리자 분노가 배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청년 시국선언문은 더 이상 ‘엘리트의 외침’이 아니었다.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황상민 위즈덤센터 고문은 “청년들이 취업과 비정규직 얘기를 꺼낸 건 이 시대를 사는 소시민으로서 시국선언을 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의 고민을 시민사회와 공유한 덕분에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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