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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통령의 사과

입력
2016.11.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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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1998년 두 번째 임기에 접어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나쁜 소식이 전달되었다.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었다. 언론은 ‘지퍼게이트’라고 비아냥거렸다. 특별 검사 케네스 스타가 성역 없이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과정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끝도 없는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국민의 감정이 악화하였다. 삼척동자 눈에도 뻔한 사건을 속임수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급기야 미국하원은 탄핵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가결되고 만다. 백악관 인턴 여성과 문란한 행각이 문제라기보다는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대통령의 행동에 국민이 더 크게 실망하고 탓이었다. 결국 위증 및 위증교사라는 중죄로 막다른 골목까지 가서야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놓았다. 임기는 이어졌지만 상처는 컸고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의 올해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의 직전 대통령이자 호세프의 정치적 스승인 룰라 다 시우바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선풍적인 룰라 전 대통령의 인기를 업고 호세프 전 대통령은 브라질 최고 권좌에 올랐다. 집권 초에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8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전직 대통령의 후광 효과에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배경이 뒤따르면서 2014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으로부터 찾아왔다. 국영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100억 헤알(약 3조5,200억원) 비자금 비리 의혹이 드러난 점이다. 브라질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룰라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이 파헤쳐졌다. 이런 상황에도 호세프 전 대통령은 분노한 국민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국정 농단 상황에 부인으로 일관했고 급기야 2014년 재선 당시 브라질 정부 회계 조작 의혹마저 불거졌다. 브라질 국민의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고 브라질 정국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올해 열린 올림픽에조차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결국 탄핵이라는 극단적 사태를 비껴가지 못하고 말았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관저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야당은 정당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키려 한다“며 “국민 주권과 사회적 진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맞서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미 국민의 마음은 떠나고 난 뒤였다.

한국은 지금 절망 상황이다. 투표자의 절반이 넘는 51.6%의 득표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절반 가까이 되는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도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했다.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 북한의 핵 실험 등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국민은 대통령을 의심하고 원망하기보다는 미흡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믿어 주었다. 그런데 쉽사리 믿기지 않는 초대형 부정과 비리 스캔들인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이번 게이트는 비단 최순실 개인의 의혹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과 각종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악성종양 급 국기 문란 즉 국정 농단 사태다.

흥분한 국민 여론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사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작 9분의 담화로 900여일 이상 비선에 농락당한 국가와 수십 년간 특정인에게 정상적인 ‘기운’을 빼앗긴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을 녹일 순 없다. 국가 비상상황에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해야 한다. 분노의 촛불 행렬이 여기에서 멈출지 아니면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횃불 집회가 될지는 오롯이 대통령이 다음 사과에 나선다면 어떻게 말할지에 달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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