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회색 정장에 침통한 표정
개인사 언급하며 감정에 호소
“스스로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에 밤잠 못 이뤄”
취재진에도 사과… 질문은 안받아
최순실 게이트로 두 번째 국민 앞에 선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발표 내내 울먹였다. “모든 게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고개를 숙였고, ‘송구’ ‘죄송’ ‘사죄’ ‘통감’ 등 이전에는 쓰지 않던 단어로 수 차례 사과했다.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심경을 토로할 때는 눈가에 눈물마저 고였다. 담화가 진행된 약 9분 동안 감정에만 호소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감성 사과’ 속에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의혹에 대한 설명은 빗겨갔다.
박 대통령은 4일 오전 10시30분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 침통한 표정으로 흰 종이 한 장을 손에 든 채 등장했다. 열흘 전(10월25일) 처음 대국민사과 회견 당시 푸른색 계열 옷을 입었던 데 반해, 이날은 한층 어두운 짙은 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1차 때와 달리 프롬프터를 사용하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이번 게이트를 ‘최순실씨 관련 사건’이란 단어로 규정한 채, 입을 떼기 시작한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목소리가 떨렸고, 눈시울도 간간이 붉어졌다. 특히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발언할 때는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안보 위기와 경제 문제를 거론할 때는 목소리 톤이 다소 결연해졌다.
최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운한 개인사를 엮어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 박 대통령은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됐고 왕래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와 관련해서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고 밝혀 최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전하는 데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들다”거나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는 말들이 그랬다.
담화문 낭독에 걸린 시간은 9분여로, 1차 때 1분35초에 비해 훨씬 길어졌다. 갑자기 일정이 잡혔던 1차 때와 달리 경호인력도 배치됐고,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기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쓰인 연단도 등장했다.
담화문 낭독 이후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사죄한 박 대통령은 단상에서 내려와 예정에 없이 취재진에게 다가가 “여러분께도 걱정을 많이 끼쳐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질의응답은 받지 않고 떠났다.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 배성례 홍보수석, 최재경 민정수석 등 주요 참모들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등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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