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이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최대 격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자체가 다양한 서비스를 확대 적용시킬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인데다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도와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고 ‘빅 데이터’까지 수집 통로가 될 것이란 점도 내비게이션 전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이유다.
실제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 업체들은 자체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하나씩 갖고 있다. 애플은 2013년 대중교통 애플리케이션 개발사 홉스톱와 지도제작 업체 브로드맵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코히어런트 내비게이션까지 사 들였다. 최근에는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05년 디지털 3차원 지도인 ‘구글어스’, 2007년 ‘스트리트 뷰’ 서비스를 시작한 구글도 2013년 이스라엘의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 애플리케이션 업체인 웨이즈를 인수했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모두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갖고 있다. 양대 인터넷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자사 지도 서비스와 결합해 내비게이션을 서비스하고 있다.
이들이 내비게이션에 주목하는 것은 미래의 내비게이션은 단순히 빠른 길을 안내하는 기능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이용자들의 이동 경로, 위치 정보 등 데이터를 쌓으면 이를 다른 서비스에 확대 적용하거나 결합해 기능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현재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은 이용자 수에서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는 SK텔레콤의 T맵을 선두로 카카오내비, KT내비, 네이버 내비게이션 등이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현대앰엔소프트나 맵퍼스, 팅크웨어 등 내비게이션 전문 업체들도 경쟁 중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내비게이션 이용자를 1,5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국내에 내비게이션이 처음 소개된 건 1990대 후반이다. 현대오토넷이 차량용 내비게이션내 출시한 것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내비게이션은 인터넷과 연결되고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제 내비게이션의 기능은 단순히 주변 지도를 보여주거나 빠른 길을 찾아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는 평면 지도를 보여주기만 했다면, 2008년 이후 출시된 내비게이션들은 3차원(3D) 지도에 증강현실(AR) 기술을 더해 사실감을 높였다. 여기에 감지기(센서)도 달아 신호를 대기할 때 불이 파란색으로 바뀌거나 앞 차량이 출발하면 이를 인식하고 경보음을 울려 알려주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내비게이션은 차량용 폐쇄회로(CC)TV인 블랙박스 역할도 한다. 내비게이션이 차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기로 발전한 셈이다.
SK텔레콤이 최근 동부화재와 손잡고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는 운전자가 T맵을 켜고 500㎞ 이상 주행하면서 안전 운전 점수가 61점 이상이면 보험료를 5% 할인해 주는 서비스다. 카카오는 카카오내비를 카카오 택시나 카카오 드라이버(대리운전 예약 서비스), 카카오 파킹(주차장 예약 서비스) 등 교통 서비스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플랫폼은 다가오는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핵심이다. 자동차가 알아서 길을 찾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최적의 경로를 찾고, 주변에 장애물이 있으면 이를 피해가는 등 내비게이션 기술이 필수적으로 결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좌회전을 하기 전에는 1차로로 달려야 하는데 이런 판단을 자동차가 내리기 위해서는 어느 차선에 있는지 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통신업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차를 만들려면 내비게이션 기술을 사거나 계약을 맺고 사용하는 방식으로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IT 업체들이 현재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개발하고 고도화하는 것은 이에 대비한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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