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러 왔습니다.”
2일 오후 8시40분 서울 강북구 한 다세대주택 초인종이 울렸다. 집 안에 있던 30대 남성 A씨가 인터폰으로 누구냐고 묻자 허름한 행색의 백모(45)씨가 답했다. A씨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주택은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인들의 숙소여서 매물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A씨가 현관문을 열자 백씨는 갑자기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가 든 A씨는 함께 살던 동료들과 수상한 남성을 쫓기 시작했다. 더구나 백씨가 골목길이 아닌 인근 야산으로 도주한 탓에 군인들은 그가 간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곧 붙잡힌 백씨 가방에서는 이틀 전 우편함에 넣어뒀다 분실한 비상용 현관문 열쇠까지 나왔다. 백씨를 간첩으로 확신한 군인들은 신원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어눌한 말투로 “입주자가 집을 내놨는데 나도 입주자다”라는 등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가방 안엔 열쇠를 제외하면 화장지, 비닐봉지, 쓰레기 등 잡동사니만 가득했다.
경찰에 인계된 백씨는 거주가 일정치 않은 노숙인으로 밝혀졌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군 숙소 열쇠를 훔친 혐의(절도)로 백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숙소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려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경찰 조사에서도 엉뚱한 말만 늘어 놓는 등 정신이 온전치 않아 범행 의도가 있었다고 확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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