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
제프 다이어 지음ㆍ김현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392쪽ㆍ1만5,000원
탐닉하고 탕진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이 재능은 청춘의 시기에 특히 빛난다. 이러한 재능의 소유자는 술이든 약이든 섹스든 무언가에 언제나 취해 있으며, 사랑은 현존의 근거이므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늘 홀려 있다. 고로 삶은 과잉으로 넘쳐 흐른다. 그 어떤 것에도 아직 입문하지 못한 동년배의 청년들에게 백만 년의 세월을 산 것 같은 그 재능은 마성의 매력으로 흠모의 정을 불러일으킨다.
비극은 이런 삶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 탐닉과 탕진에는 자기파괴적인 요소가 있어서, 실컷 누리기만 하고 안전하게 쏙 빠져 나오는 일은 가능하지가 않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가 보여주는 세계가 바로 이 취기와 황홀경의 삶이다. 물론 그 흔한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리가. 이 소설의 작가가 제프 다이어(58)인데.
‘파리 트랜스(Paris Trance)’가 원제인 이 소설은 무아지경을 뜻하는 트랜스라는 단어가 적시하듯 파리에서 보낸 황홀의 한 때를 그린다. 책을 한 권 쓰겠다는 문학적 야심을 갖고 지루한 런던에서 행복을 약속하는 도시 파리로 건너온 영국 청년 루크가 주인공인 데서 이 소설은 이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대한 오마주임을 선언한다. 재능은 잠재된 가능성과 자질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행력과 지구력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루크의 문학적 재능은 기실 재능이 아니다. 한 글자도 쓰지 않은 것은 물론 기초조사마저 한 적 없는 그의 나태와 그저 무슨 끝내주는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린 수동성은 그를 당연하게도 좌절과 실패로 이끈다.
소설은 어느 프랑스인과도 사귀지 않고, 저절로 습득될 것이라며 프랑스어도 배우지 않은 채 권태에 치를 떨던 루크가 우연히 창고물류 일자리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함께 일하던 영국 친구 알렉스가 정확하게 차준 축구공 덕분에 평소 눈독을 들여왔던 베오그라드 출신의 매력적인 여인 니콜과 사귀게 된 루크는 정신과 육체를 아낌없이 탕진하는 연애에 탐닉한다. 알렉스 역시 샤라라는 통역사와 사귀며 넷은 완벽한 짝을 만났다는 행복감 속에 자주 어울리지만, 이 황홀의 네트워크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제프 다이어의 특급 에세이스트로서의 역량은 소설을 일종의 행복론으로 만든다. 하지만 내면과 심리묘사에 치우치는 철학적 서사와는 정반대다. 사건은 수시로 터지고, 대사는 재치와 유머로 빛나며, 인물들은 자아의 안과 밖을 바쁘게 넘나든다. “그런 때가 오겠지, 라고 생각했다. 오늘 밤을 되돌아보게 될 날. 다른 침대에 누워, 이제 행복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날이 올 거야. 그때 오늘 밤을 생각하겠지.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떠올리고, 지금 이렇게 행복의 한가운데에서도 이 행복이 사라지고 난 미래의 어느 때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떠올리겠지. 그리고 그 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 느끼는 행복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깨닫겠지….”
지복의 순간, 잠든 연인 옆에서 뒤척이며 루크가 되뇌는 이 말은 훗날 “행복을 정량으로 딱 나눠서, 일주일 동안 모든 날에 고르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법을 배워버린” 알렉스와 대비된다. 사랑의 열락 속에서 자기파괴의 기미를 느낀 루크는 “인생에서 뭔가를 파괴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어”라며 돌연 일방적 이별을 선언하고 런던으로 돌아간다. 샤라와 결혼해 안락한 중산층 유자녀 가정을 이룬 알렉스는 10여 년 후 고독한 폐허 속에 자신을 유배시킨 루크를 찾아간다.
폭죽처럼 터지는 20대 청춘의 사랑과 열정을 세련되고 지적인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탐닉하기 위해선 행복의 유한성과 이후의 공허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베짱이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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