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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한 정성이 빚어낸 근육질 밀가루…우동 한 그릇

입력
2016.1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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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합정동 우동집 교다이야에서 갓 썰어낸 면. 선연하게 날이 서 있다.
서울 합정동 우동집 교다이야에서 갓 썰어낸 면. 선연하게 날이 서 있다.

“국물이 끝내줘요.” 20여년 전 광고가 여전히 생생하다. 포근해 보이는 집안에서 호로록 소리를 내며 넘기던 그 따뜻한 국물은 아닌 게 아니라 끝내줘 보였다. 부드럽고 탱탱한 면발도 당시의 인스턴트 면 시장에 없던 것이었다. 광고에서도 카피는 이랬다. “생생한 면발”.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상륙한 우동은 열차나 고속버스가 쉬는 사이 바쁘게 넘기는 ‘가락국수’로 변모했다. 시큼한 면을 삶아 한 솥 끓여둔 육수에 담가 몇 가지 허술한 고명을 올린 푸근한 한 그릇은 꽁꽁 언 설날 풍경의 한 장면으로 선명히 남아 있다. 그 맛이 그리워 분식점에서도 우동을 찾았고, 충무로의 노포에서도 정성들인 우동을 씹어 넘겼다. 계보는 일본의 우동과 한국의 가락국수를 넘나들며 이어졌다.

우동 신르네상스 열리다

맛이야 있었다. 고소하고 달큼한 국물에 담긴 두껍고 부드러운 면, 미끈하게 넘어가는 질감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문제는 우동도 인스턴트 음식의 하나로 자리 잡아 버렸고, 시장이 생겼다는 점이다. 다양한 형태의 인스턴트 우동 제품이 식생활에 들어왔고, 체인점도 성행했다. 우동은 몇몇 한국식 장인정신을 잇는 노포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쉽게 만든 똑같은 맛을 내기 시작했다. 분식집 세트 메뉴에서 불어터진 우동을 국 대신 주는 처지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음식의 하향평준화다. 획일화가 뒤따르고, 그 기치에서는 맛보다 효율이 더 중시된다.

최근 들어서는 공기가 달라졌다. 인스턴트 우동 중에서도 면발과 육수 맛에서 변화를 준 다양한 우동 종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그 배경에는 한국 우동의 계보를 따르지 않고 우동의 고향인 일본의 원전을 참조한 ‘수타 우동’이 있다. 10여 년 전부터 굳이 면을 만들고 육수를 우리는 번거로운 일을 자처한 우동집들이 나타났다. 대개가 가가와현에서 탄생해 우동의 대표주자가 된 사누키 우동이다.

새로운 적통의 계보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우동은 화려하기보다 묵묵하다. 일본 라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짬뽕이나 쌀국수가 권세를 누리는 동안에도 우동은 결코 붐이었던 적이 없다. 분당의 야마다야, 서교동 댕구우동, 가미우동, 겐로쿠, 이태원 니시키 등이 엉금엉금 등장하며 시대를 이끌었다. 군마현의 미즈사와 우동을 표방하는 신사동 와라쿠, 아키타현에서 비롯된 이나니와 우동을 선보인 을지로 이나니와요스케, 탄력 강한 면발이 특징인 서교동 우동 카덴, 신흥 강자로 떠오른 동교동 우동 카에, 조용한 강자로 평가 받는 남가좌동 카타쯔무리 등도 각자의 자리에서 팬층을 넓혔다.

교다이야에서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사람 손으로 반죽을 밀고 작두로 일정하게 면을 썬다.
교다이야에서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사람 손으로 반죽을 밀고 작두로 일정하게 면을 썬다.
교다이야에서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사람 손으로 반죽을 밀고 작두로 일정하게 면을 썬다.
교다이야에서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사람 손으로 반죽을 밀고 작두로 일정하게 면을 썬다.

신실한 성의가 만드는 음식

지난달 31일 서울 합정동 교다이야.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새로운 손님이 들 때마다 주방에서는 ‘퉁퉁퉁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는 면을 작두로 썬다. 주방에 주문이 들어갈 때마다 날카로운 단면으로 반죽을 가른 작두가 도마에 튕기는 일정한 소리가 들려온다.

시작은 밀가루다. 20㎏ 밀가루 한 포를 소금물로 반죽한다. 날씨와 밀가루 상태에 따라 20~30분씩 네 번을 밟는다. ‘수타 우동’은 대개의 우동집에서 관용구다. 손으로 치대는 ‘수타’ 대신 체중을 다 실어 발로 치대는 ‘족타’로 반죽한다. 물론 맨발로 바로 밟는 것이 아니기에 청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밟는 사이사이에는 20여분씩 쉬면서 반죽도 쉬게 둔다. 이렇게 밟아둔 반죽은 24시간 이상 숙성시켜 다음날 사용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전날 밟아둔 반죽을 꺼내 다시 밟고 6인분 분량씩 떼낸 후 또 한번 짧게 숙성시킨다. 면이 될 준비를 마친 반죽은 밀대에 밀리고 작두에 베인다. 0.5㎝ 두께로 밀어 0.5㎝ 너비로 썬다. 반죽을 밀고 면을 자를 때는 들러 붙지 않도록 옥수수 전분을 묻히지만 삶는 동안 씻겨 나가므로 반죽의 질감이나 맛에 영향은 주지 않는다. 이 일이 매일 반복이다. 스무 평 남짓한 우동집에 여덟 명이 붙어 일하는 이유다.

미타우동에서는 제면기를 십분 활용한다. 소금물과 밀가루를 뒤섞는 1차 반죽 과정에서는 반죽이 아직 푸슬푸슬하다.
미타우동에서는 제면기를 십분 활용한다. 소금물과 밀가루를 뒤섞는 1차 반죽 과정에서는 반죽이 아직 푸슬푸슬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해 평일 점심에만 바쁘게 영업하는 삼전동 미타우동의 하루도 매일이 지난한 반복이다. 주방 정리를 마치면 일과의 마무리로 반죽을 만들어야 하루가 끝난다. 면 만드는 방법은 또 다르다. 8㎏ 분량의 밀가루로 60인분가량의 면을 만든다. 반죽에 밀가루와 소금물만 들어가는 것은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기계로 뒤섞기만 한 반죽은 아직 푸슬푸슬하다. 이것을 32도로 온도를 맞춘 숙성고에서 한 시간 재워 뒀다가 본격적으로 발질을 시작한다. 앞뒤로 10분씩 밟는다.

이 집은 제면기를 십분 활용한다. 사람이 하는 것과 원리는 똑같고, 오히려 균일한 면이 나와 결과가 더 좋다는 이유다. 사람이 밀면 동그란 모양에서 면을 잘라내다 보니 버려지는 꼬투리가 많은데 기계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면을 펴기 때문에 버려지는 양도 적다고 한다. 사람 무게보다 훌쩍 무거운 압력으로 밟아둔 반죽을 누르면 판두부 같은 6면체의 밀가루 반죽이 나온다. 이것을 또 18도에서 17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제면기가 주방 밖에 나와 있는 탓인지 미타우동은 면을 아침에 모두 잘라 둔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반죽 조각에 옥수수 전분을 묻힌 후 제면기를 사용해 펴고 정해둔 규격으로 자른다. 이 집 면은 두께가 0.38㎝에 너비가 0.48㎝이다. 우동 면의 켜 사이로 공기와 물이 들어가며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이렇게 재단해야 익혔을 때 정사각형에 가까운 면 모양이 나온다. 면은 15분 30초를 정확히 지켜 삶는다. 15분 이상 삶아야 한다는 일본 사누키 우동의 법도 그대로다.

숙성까지 마치고 눌러서 늘이기 직전의 반죽. 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손으로 눌러도 금세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미타우동의 반죽이다.
숙성까지 마치고 눌러서 늘이기 직전의 반죽. 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손으로 눌러도 금세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미타우동의 반죽이다.
숙성까지 마치고 눌러서 늘이기 직전의 반죽. 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손으로 눌러도 금세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미타우동의 반죽이다.
숙성까지 마치고 눌러서 늘이기 직전의 반죽. 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손으로 눌러도 금세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미타우동의 반죽이다.

밀가루 근육은 글루텐의 요술

서울에서 북과 남으로 손꼽히는 두 곳 우동집은 대체 왜 이 고된 매일을 반복하는 것인가. ‘허리’라는 뜻의 일본어 고시(腰)가 그 답이다. 우동은 국물 맛이 끝내줘서 나쁠 것이야 없지만, 기실은 면이 알파요 오메가다. 사누키 우동의 면은 부드럽게 씹히는 동시에 쫄깃해야 하고, 탄성은 있되 딱딱하진 않아야 하며, 매끄럽되 잘린 모서리엔 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존재론적 궤변이 성립하는 이런 우동 면을 ‘고시가 있다’고 표현한다.

단지 밀가루에 소금물을 섞어 치댄 반죽이 고시가 있는 면이 되는 것은 글루텐이 부리는 요술이다. 밀가루 안의 단백질이 물과 압력을 만나면 글루텐이라는 이름의 단백질로 변한다. 이 단백질은 딱 껌 같다. 용수철 모양의 구조를 갖고 있어 쫙쫙 늘어났다가도 제 자리로 돌아간다. 또 저들끼리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중국에서는 글루텐을 ‘면근(麵筋)’이라고 부른다. 밀가루의 근육이라는 뜻이다. 잘 쳐낸 사누키 우동의 단면에는 촘촘한 켜가 나있다. 반죽은 사방팔방 멋대로 뻗어 있는 글루텐을 일렬 종대로 정돈하고 페이스트리처럼 여러 겹으로 쌓는 지난한 과정이다. 밀가루와 수분이 균일하게 뒤섞이게 하고, 반죽 안의 공기를 사정 없이 빼내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의 힘이 들어가고, 과한 시간이 든다. 근육질의 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저들 우동집은 매일이 지난하고 고된 반복이다.

그리하여 우동이 존엄하다. 미타우동의 박상현 셰프는 “우동 면은 정해진 단계가 많아 번거롭긴 해도 지키기만 하면 좋은 면이 나온다. 대신 하나라도 빼먹거나 잘못하면 상태가 확 달라진다”고 했다. 노력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성의가 배신하지 않고 편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탄탄한 우동 면이 울대를 스칠 때, 그것이 단지 밀가루에 불과했으며 누군가 치대고 즈려밟아 시간을 두어 숙성시켰음을 기억한다면 노력과 정성의 존엄을 다시 잊지 않을 수 있다. 서둘러 불어온 겨울 바람에 우동 한 그릇이 사무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근육질 우동을 제대로 즐기는 첫 번째 방법. 진한 간장 육수를 무쳐 먹는 자루붓카케우동이다. 교다이야 자루붓카케우동 정식.
근육질 우동을 제대로 즐기는 첫 번째 방법. 진한 간장 육수를 무쳐 먹는 자루붓카케우동이다. 교다이야 자루붓카케우동 정식.
두 번째, 가케우동은 ‘끝내주는 국물’과 함께 먹는 가장 익숙한 방식의 우동. 뜨거운 육수에 넣기 전에 찬 물에 헹궈 끈적한 기운을 제거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만든 면이라면 탄탄함은 기죽지 않는다. 교다이야 오뎅우동.
두 번째, 가케우동은 ‘끝내주는 국물’과 함께 먹는 가장 익숙한 방식의 우동. 뜨거운 육수에 넣기 전에 찬 물에 헹궈 끈적한 기운을 제거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만든 면이라면 탄탄함은 기죽지 않는다. 교다이야 오뎅우동.
세 번째는 직접 면을 만드는 우동집의 자부심을 담당하는 메뉴. 우동 면을 삶아낸 물에 담근 채로 한 올씩 건져 진한 간장 육수에 찍어 먹는다. 미타우동의 가마아게 우동.
세 번째는 직접 면을 만드는 우동집의 자부심을 담당하는 메뉴. 우동 면을 삶아낸 물에 담근 채로 한 올씩 건져 진한 간장 육수에 찍어 먹는다. 미타우동의 가마아게 우동.
깔끔한 육수에 말거나, 간장 육수에 찍어 먹는 것만 우동이 아니다. 우동 즐기는 방법 네 번째, 그 가게에서 개발한 특별한 우동 메뉴도 도전해본다. 미타우동에서 고안한 명란앙카케우동은 전분으로 걸쭉하게 만든 육수에 달걀을 듬뿍 풀고 명란을 풀어 부드러운 감칠맛이 꽉 차있다.
깔끔한 육수에 말거나, 간장 육수에 찍어 먹는 것만 우동이 아니다. 우동 즐기는 방법 네 번째, 그 가게에서 개발한 특별한 우동 메뉴도 도전해본다. 미타우동에서 고안한 명란앙카케우동은 전분으로 걸쭉하게 만든 육수에 달걀을 듬뿍 풀고 명란을 풀어 부드러운 감칠맛이 꽉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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