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시카고 컵스와 디트로이트의 월드시리즈 4차전이 열린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 홈팀 컵스를 응원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빌리 시아니스는 애완용 염소 ‘머피’를 데리고 갔다. 염소를 위한 티켓까지 사서 문제없이 입장했다. 그런데 냄새가 난다는 팬들의 항의로 염소와 함께 쫓겨난 머피는 “망할 컵스, 다시는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당시 컵스는 4차전에서 1-4로 졌고, 5차전과 7차전까지 내주면서 결국 3승4패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월드시리즈 ‘무관’이 71년 간이나 지속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염소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1876년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한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해는 1908년이다. 한국사(史)를 대입하면 조선시대 순종 2년 때의 일이니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직업은 ‘컵스 팬’이라는 농담은 시쳇말로 ‘웃픈 현실’이었다.
컵스가 71년 만에 저주를 풀고, 108년 만에 우승 한(恨)을 풀었다. 컵스는 3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와 월드시리즈(7전 4승제) 7차전에서 연장 10회초 터진 벤 조브리스트의 결승타를 앞세워 8-7로 승리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몰렸다가 4승3패로 기적의 우승을 차지한 컵스는 ‘염소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역대 월드시리즈 사상 1승3패 팀이 3연승을 거두며 우승에 성공한 경우는 피츠버그(1925년), 뉴욕 양키스(1958년), 디트로이트(1968년), 피츠버그(1979년), 캔자스시티(1985년)에 이어 컵스가 여섯 번째다.
반면 68년 만의 우승을 눈앞에 뒀던 클리블랜드는 안방에서 7차전을 내주며 ‘와후 추장의 저주’를 풀지 못하고 3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오래된 우승 역사를 가진 팀으로 남게 됐다.
클리블랜드가 앞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때는 1997년. 당시도 7차전 승부에, 연장전 승부였다. 연장 11회말 에드가 렌테리아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2-3으로 졌다. 클리블랜드는 19년이 흘러 다시 선 월드시리즈 최종전 연장전에서 고배를 드는 운명의 장난을 맞닥뜨렸다.
월드시리즈 MVP는 7차전 연장 10회말 결승타를 포함해 7경기에서 타율 3할5푼7리(28타수 10안타)에 2타점을 올린 벤 조브리스트(35)에게 돌아갔다. 이 상은 ‘염소의 저주’ 이후 1955년 제정돼 조브리스트는 컵스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MVP가 됐다.
시리즈 전체도, 7차전도 108년 만의 컵스 우승을 위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컵스는 1회초 선두타자 덱스터 파울러의 홈런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7차전 1회 선두타자 홈런이며 클리블랜드를 이끌어온 코리 클루버의 월드시리즈 첫 피홈런이었다. 컵스가 6-3으로 앞선 8회말 2사까지만 해도 더 이상의 반전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선발 존 레스터가 호세 라미레스에게 내야안타를 내주자 구원 등판한 아롤디스 채프먼은 3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브랜던 가이어에게 2루타로 1점을 내줬고, 라자이 데이비스한테 동점 투런포까지 얻어맞고 말았다.
분위기는 클리블랜드로 완전히 넘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컵스의 저주 탈출 기운은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6-6으로 맞선 연장 10회초 공격 1사 2루에서 클리블랜드 벤치는 앤서니 리조를 고의4구로 내보내고 조브리스트와 대결을 택했지만, 조브리스트는 좌익 선상 2루타로 결승점을 냈다. 이어진 1사 만루에서는 미겔 몬테로의 안타까지 터져 컵스는 8-6, 쐐기점을 냈다. 클리블랜드는 10회말 2사 후 브랜든 가이어가 볼넷을 골라낸 뒤 도루로 2루를 밟았고, 데이비스의 중전 적시타로 1점 따라갔다. 하지만 마이클 마르티네스가 내야 땅볼로 물러나면서 27번째 아웃카운트에 불이 들어왔고, 13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기 후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컵스의 우승을 축하하면서 백악관 방문을 제안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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