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ㆍk재단 출연금 핵심 역할
기업들 압박 정황 드러났지만 청탁 밝혀야 ‘제3자 뇌물수수’
‘뇌물죄’는 입증하기더 힘들어
직권남용 혐의 적용은 가능할 듯
대통령이 뇌물 주체될 땐 ‘공범’
2일 오후 소환될 예정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대기업을 압박해 미르ㆍK재단에 800억원대의 출연금을 몰아줬다는 의혹의 중심인물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발화점이 되기도 한 두 재단 관련 비리와 정권을 잇는 핵심 고리인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 엄중 처벌이 가능한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 여부가 안 전 수석의 처벌 수위와도 관련돼 있다.
안 전 수석이 기업들을 상대로 강제 모금에 나선 정황은 정현식 전 K스포츠 재단 사무총장 및 ‘비선실세’ 최순실(60)씨가 소유한 더블루K 전 대표 조모씨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이 고위 공직자 신분으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에 재단 출연금을 내놓도록 압박하고,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에 70억원 출연을 추가로 요청하는 데 개입했다는 진술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혐의는 제3자 뇌물수수 또는 뇌물 혐의다. 제3자 뇌물수수의 경우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주도록 하거나 요구할 때 적용된다. 모금 액수가 800억원 상당에 이르는 만큼 1억원 이상의 뇌물을 수수에 해당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 현대차 등 기업들이 안 전 수석에게 뭔가를 청탁하고 그 대가로 출연금을 냈다는 근거가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서울의 한 법원 판사는 “현재까지는 최순실씨나 박근혜 대통령, 혹은 안 전 수석의 영향력을 의식한 대기업들이 마지 못해 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법인세 인상 저지, 세무조사 무마, 수사 무마 등이 청탁 내용이 될 수 있겠지만 기업들이 이를 실토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3자 뇌물수수 사건에서 청탁 내용에 대한 검찰의 입증 실패로 무죄가 난 대표적인 사례가 변양균ㆍ신정아 사건이다. 학력위조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신씨와 연인 관계였던 변 전 청와대 청책실장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10개 기업에 대해 신씨가 학예실장으로 있던 성곡미술관에 총 8억5,000만원을 후원하도록 요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안 전 수석이 최씨와 관계를 바탕으로 기업들에 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한 것과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기업들이) 막연히 선처해 줄 것을 기대하거나 직무와 무관한 다른 동기에 따라 제3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경우 묵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청탁이 라고 보기 어렵다”며 변 전 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이상득 전 의원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될 때도 검찰은 포스코로부터 신제강공장 공사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사실을 적시했다.
부정 청탁 없이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 금품 전달 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뇌물수수 혐의 역시 적용이 쉽지 않다. 뇌물수수가 적용되려면 미르ㆍK스포츠재단으로 흘러간 기업의 자금이 사실상 안 전 수석에게 흘러간 것으로 봐야 한다. 안 전 수석은 “최순실씨는 전혀 모른다. 재단 업무에 관여한 바도 없다”며 초기부터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또 다른 현직 판사는 “직무 관련성의 경우는 안 전 수석이 경제수석을 지내 기업들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던 만큼 ‘포괄적 뇌물’ 판례가 가능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금품이나 대가를 받은 주체가 안 전 수석이라는 걸 입증하는 것은 훨씬 더 힘든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뇌물 범죄의 주체가 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항간에 제기되는 의혹처럼 두 재단이 박 대통령의 퇴임 후를 위해 설립됐다는 것이 인정될 경우 박 대통령이 뇌물 수수의 주체가 되고 안 전 수석을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언론에서 밝힌 사정만으로는 검찰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안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 혐의 적용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형 선고가 가능해 뇌물죄에 비해 형량이 가볍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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