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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내 치마가 제일 짧아

입력
2016.11.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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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였다. 나는 짤막한 치마를 자주 입는 대학교 신입생이었다. 교양과목 강사는 수업이 끝난 후면 자꾸 나를 잡아끌었다. 밥을 함께 먹자는 거였다. 짧은 치마를 입은 나를 일으켜 세워 그 자리에서 한 번 돌아보라고 말을 한 다음날, 나는 총여학생회를 찾아갔다. 같은 강사로부터 똑같은 짓을 당한 신입생 두 명이 더 있었다. 총여학생회에서는 대자보를 준비했고 우리 셋은 강사가 속해있던 학과의 학과장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강사 관리를 못한 내 책임이에요.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번 학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다음 학기부턴 절대 강의를 주지 않을게요.” 그의 표정은 정말 미안해 보였고 부끄러워 보였다. 우리도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그의 연구실을 나오려던 참이었다. 교수는 여전히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뭣하러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녀요… 거참, 누구 좋으라고….”

스무 살 우리들은 학과장실을 나와 인문대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셋 다 치마가 짤막했다. 겨울이 다 다가온 날씨에 다리가 시큰했다. “내 치마가 제일 짧아.” 셋 중 누군가 말했고 “아니야, 내 치마가 더 짧지 않아?” 또 누군가 대답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누가 그런 말을 했건 아마 내 치마가 제일 짧았을 것이다. 뜨거운 자판기 밀크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우리는 조금 울었고 또 조금 웃기도 했다. 그러고는 총여학생회 사무실을 찾아가 대자보를 취소했다. 그녀들이 말렸지만 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그런 일을 잘 따지지 않는 여자들로 자랐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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