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ㆍ관계 입김 차단할 방안 빠져
근본적인 쇄신 아쉬워” 지적도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수조원대 국민 혈세를 삼켰다는 비판을 받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두 국책은행이 31일 나란히 혁신안을 내놓았다. ‘낙하산’ 방지대책과 조직 축소 방안 등이 핵심으로, 구조조정 실패의 주범으로 꼽히는 정ㆍ관계의 외압을 차단할 근본 대책은 담기지 않았다.
산은과 수은은 직접 채권단으로 참여하는 구조조정(워크아웃ㆍ자율협약) 기업에 대해서는 자행 임직원의 재취업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국책은행들은 지금까지 구조조정 기업에 자행 출신 퇴직자를 받을 것을 직ㆍ간접적으로 요구해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산은의 경우 8월 기준으로 구조조정 기업에 재취업한 퇴직 임직원이 모두 16명에 달한다. 하지만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낙하산은)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산은 몫이 3분의 1”이라고 밝혔듯, 산은 낙하산 못지않게 심각한 정ㆍ관계 낙하산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 기업에 대한 ‘혈세 퍼주기’ 논란에 휩싸였던 두 기관은 리스크 관리 기능도 강화하기로 했다. 산은은 부실(고정이하)여신 비율을 6.15%(6월 기준)에서 2020년 2.5%까지 낮추기로 했고, 수은 역시 이 비율을 4.34%에서 2020년까지 2% 미만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치금융이 만연한 환경에서 국책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과연 은행의 의지만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실제 두 기관이 현재의 거대한 부실을 떠안기까지는 정부의 해양플랜트 육성 정책, 서별관회의 등에 따른 대규모 여신 지원 결정 등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이날도 정부는 해운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본금 1조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가칭)를 설립하겠다며 이 자본금의 80%를 산은과 수은에 대게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회사가 부실해지면 부담은 고스란히 두 기관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두 은행은 이 밖에도 부행장수 감축(산은 11명→9명, 수은 10명→2명), 임원 연봉 삭감 등 자구안을 통해 산은 400억원, 수은 300억원 등 총 7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산은은 132개 비금융 출자회사를 투자원금을 고수하지 않고 시장가격에 즉시 매각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두 기관이 뼈를 깎는 자구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정부 차원의 의지가 담기지 않는 자체 혁신안의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산은ㆍ수은의 문제점은 국책은행에 대한 과도한 관치 금융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이를 단절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은행원들의 도덕성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계의 로비를 받은 정ㆍ관계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이 국책은행의 문제 중 하나인데 이에 대한 해소 방안이 없다”며 “힘이 실리지 않는 자체 쇄신안의 한계”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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