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같았다.
한중일 3국은 4년 전 똑같이 새 지도자를 맞았다. 2012년12월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듬해 2월 취임했다. 시진핑은 2012년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된 뒤 2013년3월 국가 주석 자리에 올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임기도 2012년12월 시작됐다.
세 지도자는 나이도 비슷하다. 1952년생인 박 대통령이 시 주석보다 한 살 많고, 아베 총리는 이런 시 주석보다 한 살이 어리다.
가문의 후광이 컸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18년 동안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보며 ‘공주’로 자란 박 대통령처럼 부친(시중쉰)이 부총리를 지낸 시 주석도 중국의 금수저인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시 전 부총리는 국민당에 쫓긴 마오쩌둥이 산시(陝西)에서 힘을 비축한 뒤 베이징으로 진격하는 과정에 기여한 혁명원로였다. 아베 총리도 2차 세계 대전 A급 전범으로 총리까지 지낸 외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와 외무상이었던 아버지(아베 신타로)를 둔, 정치 명문 후손이다.
국정 철학도 유사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 부흥과 국민 행복으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시 주석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베 총리는 ‘아름다운 일본’과 경제 부양을 위해 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는 ‘아베노믹스’를 내 세웠다. 표현은 서로 달랐지만 세 사람은 똑같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국가 지도자에 올랐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세 사람의 위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시 주석은 더 세졌다. 중국공산당은 지난 27일 제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전임자인 후진타오 주석에겐 붙이지 않았던 ‘핵심’이란 수식어를 쓴 것은 앞으로 시 주석의 권력이 더 공고해질 것이란 뜻이다. 시 주석의 임기는 최소 2022년까지다.
시 주석이 ‘핵심’이 되기 하루 전인 지난 26일 일본 자민당도 총재 임기를 현행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아베 총리가 2021년 9월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일본의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그는 앞으로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헌법 개정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일 양국에서 강한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지난 4년 국민들의 삶이 풍족해지고 기업들도 성장한 덕분이다. 2012년 7조9,917억달러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11조3,916억달러로 42.5%나 커졌다. 중국의 3분기 GDP성장률도 6.7%를 기록,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9월 실업률이 3.0%를 기록했다. 21년만의 최저 수준으로, 사실상의 완전고용이다. 기업들은 엔저 호황이다.
이런 중일 지도자와 달리 박 대통령은 취임 4년도 안 돼 최대 위기를 맞았다. 황당하고 어이 없는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진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국민들은 더 이상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영(令)도 안 선다. 그럼에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거나, 전혀 알고 싶어하지 않는 대통령의 무지와 오만은 사태만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마음 같아선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고 싶지만 나라 걱정에 이를 자제해 온 국민들은 결국 분노하며 29일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0%대 성장률과 일자리 절벽에 좌절한 이들도 함께 목소리를 냈다.
4년 간 중일은 더 강해진 반면 한국은 오히려 후퇴했다. 국가를 살려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가에 짐이 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박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국가와 민족, 가문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주변 쇄신으론 부족하다. 결단이 필요하다.
박일근 산업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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