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빠진 방위산업 육성 위해
내달 7일 박 대통령이 주재
방산업계 “36년 만에 재개” 기대
지난주 돌연 ‘안보 회의’로 바꿔
정부 소식통 “윗선서 지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할 예정인 방위산업진흥회의가 북핵ㆍ미사일 전략회의로 돌연 명칭이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침체에 빠진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준비된 회의가 대북 관련 안보 회의로 둔갑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위기에 빠진 청와대와 정부가 북핵 위협을 부각시키기 위해 방산 업체까지 동원하며 안보 마케팅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박 대통령이 11월 7일 방위사업청과 방위산업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하는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라며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이 직접 방산 관련 회의를 챙기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방위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분야”라고 강조해왔지만, 그간 행보는 군부대나 특정 방산업체를 방문하는데 그쳤다.
정부는 당초 회의 명칭을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로 추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7년 방산업체의 고충을 직접 듣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시작해 1980년까지 민관군이 머리를 맞대며 전략을 짜내던 회의체다. 올해 36년 만에 회의체가 부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방산업계의 기대감은 한껏 고조됐다.
실제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던 방산 수출 규모는 2014년 36억1,200만달러에서 지난해 34억9,000만달러로 3.4% 감소했다. 방산비리가 잇따라 적발돼 오명이 덧씌워진 탓이다. 지난해 전세계 무기거래 규모가 650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11%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장명진 방사청장은 올해 초 “연간 방산수출 규모를 공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반면 방산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앞장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방산업계의 수출 진흥을 위해 추진됐던 이 회의가 지난주 갑자기 ‘북핵ㆍ미사일 대응을 위한 국방연구개발 활성화 전략회의’로 이름이 변경됐다. 연구개발 활성화라고는 하나 올해 들어 위협이 고조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산수출 보다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방산업계의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로 회의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방사청은 올해 초부터 국내 방산업체를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고 수출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이처럼 회의 명칭이 바뀐 것은 안보 마케팅 외에 ‘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방산진흥확대회의 자체가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박 대통령과 최씨의 악연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공교롭게도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나서 윗선의 갑작스런 지시로 회의 명칭과 성격이 바뀐 것으로 안다”며 “방산업계의 위기극복을 위해 업체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듣는 게 아니라 마치 호위부대로 동원하려는 듯한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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