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ㆍ행동장애 겪는 청소년 대상
5일~4개월 합숙 치료 프로그램
학력 인정 위해 대안학교 인가도
수료율 점차 높아져 94% 넘고
입교생 자아존중감 상승 성과
“공부하기 싫었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은 입시에 매달리는데 나는 무단결석이 늘어만 갔다. 걸핏하면 PC방에서 밤새워 게임을 했다. 힘든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우울증도 심해졌다.”(고3 이모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어 늘 왕따 당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나를 싫어하고 짜증내고…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 9년 내내 혼자였다. 행동이 산만하다고 혼내는 부모님과도 늘 사이가 안 좋았다.”(중3 김모군)
“학교 생활 적응이 늘 힘들었다.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컸다. 한 번 화가 나면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결국 선생님과 크게 다투고 위탁시설에 있다가 이곳에 왔다.”(고2 이모군)
경기 용인시의 외딴 산기슭에 자리한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는 이들처럼 정서나 행동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함께 합숙하며 재활치료를 받는 곳이다. 이달 개원 4주년을 맞은 센터에 지난 26일 찾아갔을 땐 전국 초중고교에서 온 60명(중퇴생 2명 포함)이 12월 16일까지 진행되는 4개월 과정에 참가하고 있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여성가족부 위탁을 받아 운영 중인 센터는 학교 및 지역 유관기관의 의뢰를 받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기(4개월 또는 1개월) 및 단기(4박5일)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입교생의 90% 이상은 학교,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아동복지시설에서 치료를 의뢰한 이들이다. 그 자체로 위기청소년 보호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위험 청소년’들이 센터를 찾는 셈이다. 김성벽 여가부 청소년보호환경과장은 “학교 및 교육청에 설치된 Wee센터가 학교폭력 피해자나 학습 부진 학생들을 주로 담당한다면, 센터는 정서 및 행동 장애를 겪는 학생들의 치유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센터의 일과는 오전 학과 수업, 오후 동아리 활동으로 진행됐다. 수업은 학교별로 6~10명씩 반을 나눠 이뤄진다. 넉 달 간의 센터 생활이 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센터는 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일일이 대안학교 인가를 받았다.
점심을 먹은 학생들은 각자 소속된 동아리 방으로 흩어졌다. 동아리는 공예, 바리스타, 오케스트라, 댄스, 버스킹(길거리 공연), 힙합, 스포츠 등 주로 동적인 활동으로 꾸며져 있다. 유은숙 센터 기획조정부장은 “다른 연령대와 달리 청소년기엔 활동치료가 주효하다”며 “몸을 움직이면서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고, 거듭된 연습을 통해 실패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또 동아리 활동이 자격증 취득 등 진로와 연계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다음달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계획이라는 이모(고2)군은 “밖에선 그저 놀고 싶은 욕구만 앞섰는데, 센터에서 생활하면서 사회에 나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요일 오후에는 집단상담 및 집단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집단상담 시간엔 상담교사와 함께 자기인식, 대인관계, 감정조절 방법을 탐구하는데 최종 목적은 각자의 마음에 자존감을 기르는 것이다. “아무나 어울리며 싸움이나 가출, 흡연 등에 휩쓸리곤 했는데, 이젠 친구를 가리는 법을 알게 됐다”(중3 김모양),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센터 선생님 도움을 받아 대학 수시모집에 응시했다”(고3 이모양) 등의 행동 변화는 센터가 바라는 바다. 집단치료엔 명상,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주 2회 센터를 방문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한다.
학생들이 일과를 마치고 기거하는 생활동은 또 다른 치유 공간이다. 6명씩 쓰는 각 동에는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갖춘 멘토 교사가 상주하면서 스스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구성원들의 대화와 교류를 지원한다. 주간에도 각 동엔 3명의 담당교사가 지정돼 있어 학생 입장에선 전문적 상담 능력을 갖춘 교사 4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전반기 과정을 수료한 황유진(17)양은 “공감대가 같은 선생님을 만나 미래를 설계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 센터 생활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입체적 지원 덕분에 센터는 주요 지표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2013년 80.6%에 머물렀던 수료율이 올해 94.4%으로 올랐고, 학생 입교 전후 위험지수가 최근 2년 간 평균 19.0% 감소하고, 긍정지수는 12.2% 상승했다. 수료생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한 심리검사에선 자아존중감이 수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보다 중요한 일은 청소년들이 센터를 찾을 일이 없도록 가정, 학교, 사회에서 미래세대의 정신건강을 보살피는 일이다. 나상희 센터 활동교육부 팀장은 “입교생 중 가장 치유 효과가 좋은 이들은 초등학생”이라며 “폭력 등 문제적 행동이 습관화하지 않도록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인=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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