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파산 극복한 ‘에버피아’
“동남아서 무슨 이불” 비아냥에도
파스텔톤 이불로 현지 업계 1위
지난 25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흥엔성의 공업지대. 낡고 조그만 현지 업체들 사이로 현대식 건물인 에버피아 흥엔공장이 눈길을 잡았다. 1993년 100% 한국 자본으로 설립된 에버피아는 베트남 침장 업계 1위 기업이다.
1만7,000여㎡ 규모의 공장에 들어서니 현지 직원 수백명이 재봉기와 자수기 앞에서 이불 등을 만들고 있었다. ‘에버론’(EVERON) 상표가 박힌 녹색 화물차들은 부지런히 완제품을 싣고 공장을 떠났다. 99년 출시된 에버론은 시장 점유율 25%를 자랑하는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침장 브랜드다.
19년째 베트남에서 근무 중인 조용환 에버피아 전무는 “처음엔 ‘동남아에서 무슨 이불 장사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겨울이 춥고 난방 시설이 없는 이곳 이불은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더 두껍다”며 “중국풍 빨간색 이불이 전부였던 베트남 시장 흐름을 파스텔톤으로 바꾼 게 에버론”이라고 설명했다.
에버피아의 모기업으로 90년대 국내 패딩 업계 1위였던 글로윈은 이미 2003년 파산했다. 에버피아는 글로윈 투자자 중 한 명이었던 이재은 대표이사가 2004년 글로윈의 베트남 법인을 인수해 다시 일으킨 회사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다. 에버피아에는 여느 한국기업과 달리 통역이 없어 모든 한국인 직원이 베트남어를 배워야 한다. 현지인이 등기이사와 기획ㆍ감사팀장을 맡을 정도로 인사상 차별도 없다. 2010년 지어진 흥엔공장은 직원들을 위해 냉난방 시스템까지 갖췄다. 냉난방이 되는 봉제공장은 베트남은 물론 한국에도 거의 없다.
2010년 호찌민증권거래소(HOSE)에 상장된 에버피아는 한국에서 ‘2차 상장’을 준비 중이다. 계획대로 되면 베트남에 이어 국내에서 상장되는 첫 사례가 된다. 이 사장은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베트남 투자는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것은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이 가동한 2009년부터다. 이후 대기업과 굵직한 협력업체들이 잇따라 베트남에 상륙했다. 오토바이 헬멧 세계 1위 홍진HJC도 베트남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경우다.
최대 생산거점 설립 ‘홍진HJC’
“고품질 제품” 입소문 타며 불티
아이언맨 헬멧은 세계적 히트
지난 26일 하노이 북서쪽 빈푹성 콰이캉산업단지의 HJC 공장에선 ‘아이언맨’ 헬멧 생산이 한창이었다.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지만 세계 60여개 국에 수출되는 인기 상품이다.
경기 용인시와 중국 베이징에서 공장을 운영한 HJC가 베트남에 둥지를 튼 것은 2007년이다. 중국 이외 생산거점을 고민한 홍완기 HJC 회장이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두루 검토하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력이 풍부한 베트남을 선택했다.
베트남 노동력에 대한 믿음은 성공적 결과로 돌아왔다. 연간 생산량 100만개 목표는 이미 몇 년 전 달성됐다. 공장 규모도 더 커졌다. 헬멧 생산의 전 공정이 가능한 베트남은 어느새 베이징공장을 누르고 HJC의 최대 생산 거점이 됐다.
당초 HJC의 베트남 진출 목적은 수출물량 생산이었지만 이제는 인구가 1억명에 육박하는 베트남 내수시장의 문도 열고 있다. 동남아 오토바이업계 1위 혼다의 요청으로 현지에 적합한 헬멧을 개발한 게 도화선이 됐다. 가격은 비싸도 “HJC 헬멧을 쓰고 있어 살았다”는 입소문이 나며 삼성전자 등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이 직원용으로 자사의 로고를 새긴 헬멧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선 베트남 기업들도 헬멧을 맞추러 HJC를 찾아 오고 있다. 이직률이 1%가 안될 정도로 현지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다.
신치선 홍진HJC 베트남법인장은 “98%가 고졸 이상 학력인 직원들의 생산성이 매우 뛰어나다”며 “베트남 내수시장은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 라고 말했다.
외국인직접투자 몰리는 베트남
고학력에 책임감 강한 직원들
정부의 親기업정책도 매력적
지난 7월까지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누적 투자는 5,453건에, 총 투자금액은 488억 달러(약 56조원)에 이른다.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책임지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 수출과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점과 정부의 친기업정책도 베트남 진출의 중요한 이유지만 기업들이 첫손에 꼽는 것은 우수하고 풍부한 노동력이다. 임충현 대한상공회의소 베트남사무소장은 “베트남의 평균 연령은 30세 정도인데다, 교육열이 높고 책임감이 강해 동남아에서 한국인과 성향이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흥엔ㆍ빈푹(베트남)=글ㆍ사진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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