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상의해 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경우 집사람은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아내를 지칭하는 겸양의 표현이다.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동양 정서와는 달리 미국의 기혼 여성들은 ‘my wife’ 대신 ‘the wife’로 불리거나 ‘Susan’, ‘Mary’ 같은 ‘first name’으로 불리길 선호한다. 위의 문장을 영어로 옮기면 ‘Let me check with the wife and get back to you’가 되는데, 왜 ‘my wife’ 대신 ‘the wife’라고 할까. 항상 my wife만 듣게 되는 한국인에게 미국의 기혼 남녀가 ‘wife’를 ‘the wife’라고 부른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고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A: Can you come to the party this weekend? B: I’ll have to ask the wife about that. 이 대화를 보면 my wife 대신 the wife가 쓰였다. ‘You can bring along the wife’라고 말할 때에도 ‘your wife’대신 ‘the wife’가 쓰였다. 자신의 배우자를 자기의 소유물처럼 ‘my wif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감 때문에 ‘the wife’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주장도 있고, 일부 여성은 자신의 배우자를 ‘the wife’라고 부르는 것은 물건 지칭과 다를 바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다만 이러한 대화에서 ‘the wife’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원어민이어야 자연스럽고, 한국인처럼 영어 학습자들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my wife’라고 말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Let me check with the wife’라고 말할 때의 속뜻은 ‘이런 문제는 누구나 ‘자신의 아내’한테 물어야겠지요!'’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그렇다고 ‘Let me check with my wife’가 틀렸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The doctor shouldn’t do that’ 문장에서 ‘the doctor’는 특정 의사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보다는 ‘의사라면’의 뜻으로 쓰인 기본 개념(generic idea)이다. 지금도 기혼 여성들이 모이면 ‘the wife’, ‘my wife’, ‘Susan’ 같은 아내에 대한 호칭을 놓고 어떻게 불려야 좋은 것이냐는 토론이 나온다. ‘My wife’ 옹호론자들은 ‘the wife’처럼 물건이나 무관한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the wife’ 옹호론자들은 아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the wife’가 낫다고 말하며 아내라는 단어의 기본 개념을 살려야 할 때는 당연히 ‘the wife’여야 할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여성 그룹에서는 아내도 이름이 있는데, 더 정감 있고 사랑스러운 이름 대신 왜 ‘my wife’나 ‘the wife’를 사용하느냐고 따진다.
가장 확실한 용례는 ‘This is Mary, the wife of Sam Johnson’이다. 이미 언급한 사항이기 때문에 정관사 용법에 따라 가능한 예다. ‘그 집 사모님이 보시고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The wife saw my design and she thinks it’s too big) 상황에서도 ‘the wife’는 언급된 내용을 받아서 사용하는 정관사 ‘the’의 용례 그대로 쓰인 것이다. 기혼 여성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다르다. 남편이 자신을 지칭하며 ‘Well, I’ll have to run it by the wife’(그것은 아내에게 물어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약혼녀는 결혼 전인데도 ‘the wife’라는 호칭이 좋다고 말한다. 이유도 많고 용례도 다른데, 각기 그럴싸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상황과 취향에 따라 사용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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