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전력분석관 취임(?) 기자회견은 낯설었다.
27일 국가대표 전력분석관에 선임된 차두리(36)와 이용수(57)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나란히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위원장은 영입 배경을 상세히 밝힐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 코치나 다름없지만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한 이유도 설명해야 했다. 국가대표 코치를 하려면 A급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차두리는 B급만 갖고 있어 우회 전략을 쓴 것이다. 물론 차두리의 높은 인지도도 한 이유다. 이 소식에 최근 대표팀을 향했던 싸늘한 여론이 누그러지는 분위기다.
축구협회가 단순히 ‘여론무마용’으로 뽑았거나 치밀한 계획 없이 ‘졸속 선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기술위원회와 슈틸리케 감독은 수개 월 전부터 차두리의 대표팀 합류를 검토했다. 하지만 A급 자격증을 따기 전까지는 부르지 않을 계획이었다. 지난 7월경 이용수 위원장은 본보와 통화에서 “차두리는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이다. 어떻게든 한국 축구에 활용할 생각이다”고 했다. “자격증이 걸림돌이라면 2010 남아공월드컵 때 스태프로 참가한 데이비드 베컴(41ㆍ영국)같은 방식으로 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렇게는 안 한다”고 못 박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B급 자격증만 있던 홍명보(47ㆍ항저우 감독)를 코치로 뽑았다가 곤욕을 치렀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란전 완패 후 상황이 달라지자 생각이 바뀌었다.
차두리는 대표팀에 도움이 될 만한 요건을 충분히 갖췄다. 그는 유럽과 K리그에서 뛰어 양 쪽 문화를 다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다. 명 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린 아버지 차범근(63) 전 수원 감독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축구 지식이 해박하다. 띠동갑 후배 손흥민(24ㆍ토트넘)과 친구처럼 지낼 정도로 친화력도 좋다. 선수들이 인터뷰 때마다 “두리 형에게 고맙다”고 말한 건 ‘립 서비스’가 아니다. 하지만 차두리가 대표팀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것처럼 기대하는 반응은 걱정스럽다.
한국 축구는 위기 때마다 ‘깜짝 영입’ ‘삼고초려 발탁’으로 급한 불을 끄곤 했다. 2011년 말 절차를 무시한 채 조광래(62) 전 감독을 경질한 뒤 최강희(57) 전북 현대 감독을 1년 반 임대 형태로 데려왔다. 최 감독이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최 감독 은사인 조중연(70) 당시 축구협회장이 직접 설득했다. 브라질월드컵을 1년 앞둔 2013년 6월에는 허정무(61) 당시 축구협회 부회장이 미국에 있던 홍명보 감독을 만나 “한국 축구가 백척간두다”고 설득해 승낙을 받았다. 하지만 두 사령탑 모두 대표팀과 끝맺음이 좋지 않았다. 이런 과거가 ‘오버랩’되는 건 괜한 우려일까.
서형욱 축구해설위원은 SNS에 ‘차두리가 바람막이용 인사로 소비되질 않길 바란다. 힘든 시기를 거치며 행복하게 은퇴한 우리의 스타, 창창한 새내기 지도자의 커리어가 우려와 달리 순탄하게 출발할 수 있기를’이라며 기대 반 우려 반 심정을 나타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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