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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말

입력
2016.10.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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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이던 1988년 7월 국회 본회의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의 말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 “막 하자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맞고요.” 그는 ‘대통령의 말’, ‘서민의 말’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솔하고 투박한 일상어를 쓰려고 했다.

▦ 언론은 이런 대통령을 싫어했다. 말이 경박하고 품격이 없다며 비난했다. 대통령의 말을 쓰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중의 언어를 구사하는 데 뛰어났다. ‘손톱 밑 가시’ ‘불어터진 국수’ 등 비유적 표현과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같은 신조어도 선보였다. 청와대는 지난해 박 대통령의 비유 표현을 모은 어록집을 발간하면서 “살아 있는 대중적 언어로 사물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소개했다. 언론도 전달력을 높여 국민과 소통하려는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 박 대통령의 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의 단서를 찾으려는 시도일 게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사람의 마음이 모이는 곳에 기가 쌓이고, 그 기가 충만하게 쌓이게 되면 현실이 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사유방식을 드러낸다. 신기(神氣) 있는 여자에게 조종된 박 대통령의 심리상태를 보여준 표현일까?

▦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노 전 대통령이 연설비서관에게 늘 주문했던 내용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다. ‘세 번 생각한 뒤에 한 번 말하라’는 뜻이다. 진심이 담긴 말이라야 감동을 준다. 대통령의 말은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과 나라를 움직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박 대통령의 해명은 국민을 슬프게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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