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수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25일 이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했던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현 한국증권금융 감사)이 28일 나흘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 전 비서관은 “연설문 수정을 의심한 적이 없다”며 그간 제기된 의혹들을 모두 강하게 부인했는데, 사전에 청와대측과 조율을 거친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온다.
이날 오후 3시께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금융 본사에 모습을 드러낸 조 전 비서관은 “최씨에 대해 전혀 몰랐고 (연설문이) 사전 유출된 것도 알지 못했다”며 “이번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특히 올해 초 사석에서 ‘연설문을 작성해 올리면 이상해져서 돌아온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그런 말을 전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이어 “수정이 있었다는 기억은 단어 정도 수준이지 통째로 첨삭이 돼 있었던 적은 없었다”며 “대통령 연설문 완성본은 대통령의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우주의 기운이나 혼 등의 독특한 단어들을 직접 쓴 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세세한 사안에 대해서는 청와대 보안 규정 상 말할 수 없다”고 답을 피했다. 그는 연설문 초고를 어디로 전달했느냐는 질문에는 “통상 청와대 부속실로 넘기는데, 거기 비서관이 정호성씨”라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갑자기 입장표명에 나선 배경에 대해 “청와대와 일절 교감은 없었다”고 선을 그은 뒤 “불필요한 의혹들이 증폭되고 회사나 가정에 더 이상 피해를 줘선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 7월 청와대를 그만 둔 이유에 대해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다”며 “대선 기간까지 4년 넘게 연설문 일을 하다 보니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고 건강도 안 좋아져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 10년 넘게 연을 이어오며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 5개월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냈던 조 전 비서관은 지난 7월 사임한 뒤 증권금융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연설문 유출 시점인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 당시 박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만큼 연설문 유출에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 왔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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