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ㆍ이현주 옮김
민음사 발행ㆍ336쪽ㆍ1만6,000원
크레이그 램버트의 ‘그림자 노동의 역습’을 읽은 독자들은 스스로를 가여워 할지 모른다. 옆 사람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비좁은 전철을 타고 통근하는 것도 퇴근 후 직장 상사와 카톡을 하는 것도 노동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인터넷 쇼핑마저 노동이다(!). 현대인들이 24시간 내내 일한다는 저자의 과장이 호들갑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반 일리치의 개념을 빌려온 저자는 ‘그림자 노동’을 ‘보수 없이 행하는 비생산 노동’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좋자고 하는 쇼핑까지 노동이라고 하니 의아해할 독자가 있을 것이다. 쇼핑몰을 이용하기 위해 복잡한 비밀번호를 만들고 각종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느라 진땀을 뺀 경험을 떠올리면 납득이 간다. 페이스북을 하는 것 또한 그림자 노동이다. 이용자들은 프로필을 완성하고 음악, 영화, 선물 등에 대한 선호도를 드러내면서 페이스북에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술과 로봇의 발달을 비롯해 전문 지식의 대중화, 정보 그물망, 진화하는 사회적 기준이 있기에 그림자 노동이 홍수처럼 쏟아진다고 지적한다.
그림자 노동을 선호하는 쪽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업이다. ‘셀프’라는 명분 아래 재주는 고객이 부리고 돈은 기업만 챙긴다. 물론 ‘셀프’의 전제인 지식의 대중화와 고객이 더 많은 통제권을 쥔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이 골고루 분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득 분배는 더욱더 불평등해졌다.” 그뿐인가. ATM 기기나 키오스크처럼 응답하지 않는 기계들로 인해 사용자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디지털 정보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이런 노동을 멈출 방법은 없다. 구석기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거나 그림자 노동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그림자 노동을 멈출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해결책은, 비록 소극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가끔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나마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작은 대비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심오한 문제의식과 달리 다소 원론적인 해결책에 김이 새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에 무감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시간은 인생이다. 일, 돈, 시간, 이 세가지가 있으니 그 중 제일은 시간이다.” 지극히 당연한 저자의 마무리가 좀 더 묵직하게 읽히는 이유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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