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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 아직 미완이지만… 수능 위주 교실이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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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 아직 미완이지만… 수능 위주 교실이 바뀌었어요”

입력
2016.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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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부정, 채용 비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 대한 여론이 좋을 리 없다. 학종 때문에 학교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한다. 학생부와 교사추천서 문구를 학생에게 써오라는 교사. 관심도 없는 비(非)교과 활동을 하라는 교사. 자신에게 잘 보이라고 ‘갑질’하는 교사. 학종이 공교육 교사를 더 믿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교사들의 원성도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잡무로 힘든데 더 바빠졌다고 한다. 기록할 게 마땅치 않은데도 ‘창작’을 해야 하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압력에 시달린다는 얘기, 대학수학능력시험 보충수업이 줄어 수입도 줄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학생부를 조작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수상실적을 상위권 일부 학생들에게 몰아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학종 폐지를 주장해야 마땅하지만 혹시 놓친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14일 경기 양평군 양평고등학교를 찾았다. 먼저 선생님에게 물었다.

경기 양평고에서 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정윤리(오른쪽) 교사는 14일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시험 잘 보는 법을 가르쳤는데,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뒤부터 비로소 과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행복한공부연구소 제공
경기 양평고에서 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정윤리(오른쪽) 교사는 14일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시험 잘 보는 법을 가르쳤는데,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뒤부터 비로소 과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행복한공부연구소 제공

“학생부는 여러 교사의 평가… 공정성 걱정 기우”

-학종 도입 전과 후를 비교하신다면.

“전에는 당연히 수능 준비 수업을 했습니다. 과학 교사로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던 거죠. 질문은 없고 침묵만이 흐르는 교실은 배움의 즐거움이 사라진, 벗어나고 싶은 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입시제도 핑계를 대며,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젠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합니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나가는 프로젝트 학습, 학생들이 토론하고 질문할 수 있는 협동학습을 진행합니다. 그런 수업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관찰하고, 평가하여 기록합니다. 저나 학생들이나 처음엔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침묵하던 교실에서 조금씩 대화가 새어 나오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아는 것은 알려주는 학생들이 늘어갑니다. 쑥스럽지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탐구하는 능력들을 조금씩 키워갑니다.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격려하고, 미래역량을 키워 꿈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사실 지금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요. 공부를 찾아서 한다, 재미있게 한다, 수업시간이 즐겁다….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학종

프로젝트ㆍ협동학습 진행하며

학생들 성장과정 관찰ㆍ기록

대화 늘어 수업 시간에 활기

교사 여러명이 학생부에 기재

주관적 평가는 걸러지게 마련

화학을 가르치는 정윤리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면 학종이 조금 밝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이 과연 전국에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또 다른 특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전했다.

“학종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습니다. 쑥스럽지만 학교와 교사를 믿어달라는 말밖에 못하겠네요. 수능 준비에 최적화한 수업은 강의식 수업입니다. 많은 내용을 빠르고 깔끔하게 전달하고,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수업은 많은 학생들을 쓰러지게 했고, 공부의 목적이 수능 하나만으로 귀결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수업을 고민하고 개선하고자 시도하신 교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대학 입시, 수능 준비라는 벽에 부딪힌 거죠.

그런데 이제 학종이 들어오면서 그런 교사들의 고민과 노력이 힘을 얻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고민만 했다면 이제는 수업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선생님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봅니다. 여전히 학종을 반대하거나 전통적인 학력관을 갖고 계신 교사들이 있지만 달라진 교실수업을 보는 긍정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이상론보다는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확신을 더 많이 느꼈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여전히 학종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옆에 있는 교사들도 계속 고3을 지도하고 있는데, 수능 잘 본다는 믿음을 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아침부터 ‘야자’(야간자율학습) 하는 것까지 다 보잖아요. 그런데 결과가 안 좋아요. 그러면 노력했던 모든 과정이 인정을 받지 못하잖아요. 그냥 수능 못 본 학생이 되고 맙니다. 제가 가르치는 화학도, 관심이 있고 깊이 있게 공부하는 아이들과 변별을 위해 어렵게 낸 문제를 맞힌 아이 중 과연 누가 더 실력이 있는 걸까? 저는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평소 노력이나 실력을 정성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기 때문에 시비를 걸기 쉬운 게 학종이라면 수능은 정량적 평가로 딱 점수가 나오니까 결과에 시비를 걸기 어려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교사의 주관적인 평가가 공정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학생부는 교사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분이 쓰는 공간이죠. 제가 담임이니까 화학 교사니까 예뻐하니까 한 학생에 대해 정말 잘 써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사는 그렇게 써주지 않아요. 그러면 평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 교사가 지나치게 잘 써줬구나, 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주관성이 걸러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성적만 가지고, 그것도 단 몇 시간 만에 본 시험 성적만을 가지고 한 사람을 평가하는 걸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요? 사람을 보고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그래도 사실에 가까운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올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한 경기 양평고 3학년 임형태군은 “꿈을 위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고3이었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행복한공부연구소 제공
올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한 경기 양평고 3학년 임형태군은 “꿈을 위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고3이었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행복한공부연구소 제공

“수능 위한 공부였으면 지금 열정 없었을 거예요”

정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수능이라는 질서정연한 입시를 학종이 혼란에 빠뜨렸지만 그 혼란 안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을 본 것 같다. 하지만 학종을 허락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학생부 기록 때문에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눈치를 봐야 한다는 학생. 억지 춘향 격으로 비교과 활동을 해야 하고 자기소개서(자소서) 문구를 지어내느라 컨설팅업체를 쫓아다니는 학생.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노했다는 학부모. 컨설팅 사교육비가 부담이 되고 다른 부모들처럼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부모의 심정. 학종이 키운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통도 편견 없이 알고자 고3 학생 임형태군에게 물었다.

-학생이 생각하는 학종

점수 올리기만을 위한 공부

대학 입학 이후 도움 안돼

학생부 평가ㆍ자소서 작성은

열정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이번에 학종으로 수시에 지원했는데 굳이 수능 준비와 비교하자면 어떤 것 같아요.

“제 꿈을 위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재미있고 고3이지만 학교생활이 즐겁고, 직접 참여하는 활동이 많아서 어느 정도 스트레스는 받지만 대학 가서 해야 하는 협동학습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미리 준비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 열심히 했습니다. 그냥 수능 점수 올리기 위해 공부했으면 진짜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필요하지 그 이후에는 도움이 있을까 고민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열정이 생기지도 않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했을 것 같아요.”

-혹시 학종 준비를 위해 사설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나요.

“저도 1%라도 유리해지고 싶은 유혹에 서울 송파구에서 5회 받은 적이 있습니다. 1, 2, 3학년 학교생활에서 열심히 한 내용이 중요한데, 이 내용을 넣어라 이 프로젝트를 넣어라 하는 것은 불가능한 거 같고, 그래서 도움을 못 받은 거 같아요. 내용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는가, 어떤 활동에서 느낀 것이 이 학과의 어떤 특성과 맞는가 하는 조언을 받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로 소용이 없는 거 같아요.”

-특수목적고(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 학종에 필요한 활동을 많이 지원하고 선생님도 기록을 꼼꼼하게 해준다는데, 그래서 본인은 혹시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았나요.

“저도 실제로 3학년 때 프로젝트를 하면서 로봇 팔을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하드보드지를 자르고 톱질을 해서 수동으로 만들었는데 과학고에서는 모터를 사용한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어려웠기 때문에 배운 것도 많았고, 아예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거라 선생님들한테 도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성장을 했다고 어필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면접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저의 노력 같은 것을 면접에서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학생부나 자소서를 통해서 저의 열정을 충분히 보여줬고 그래도 뽑지 않는다면 억울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고3같지 않은 고3 학생과 얘기하면서 문득 얼마 전 만났던 고2 학생이 떠올랐다. 여러 기록을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학종보다는 수능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는데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옆의 엄마와 아빠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얘기를 이어갔다. “관심이 없는 ‘스펙’을 만들어봐야 스토리가 생길 수 없고 결국 기록을 꾸미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학종이라는 기회를 잡으려다가 오히려 수능 준비에도 혼선이 와 입는 피해가 훨씬 크다”는 말에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종은 미완이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런데 단지 입시에서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컨설팅을 받고 스펙을 쌓고 서류를 조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학종 자체가 아니라 학종 사용법이 잘못되어 갖게 된 불만은 없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을 속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첫 회에 인터뷰했던 권오현 전 서울대 입학본부장이 했던 말, “기업 못지않게 대학에서도 서류심사와 면접에서 속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기억한다.

만약 학종의 향방을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묻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사람이 어떤 정보를 입력하느냐에 달려 있겠다. 학종이 양이 되느냐 늑대가 되느냐는 우리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의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학종 편을 마친다. 다수 학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를 찾기 위해 분발을 다짐한다.

행복한공부연구소장

▦정윤리 교사는

-공주대 화학교육과 졸업

-경기 양평고 3학년 담임(2013~2016년)

-경기도교육청 동아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소속(막내)

-‘함께 해야 강하다’라는 신념을 갖고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즐겁고 행복한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하며 사는 중

▦학생 임형태군은

-양평고 3학년

-기계공학 분야 전공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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