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원대 방산비리 혐의로 수의를 입은 거물급 무기중개상 이규태(67) 일광그룹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고도 방청석을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는 얼굴로 법정을 나갔다. 10개 혐의 중 핵심인 방산비리 대목에서 무죄가 났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검찰은 연이은 ‘방산비리’ 무죄로 또 체면을 구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심담)는 27일 “(터키 방산업체) 하벨산과 공모해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ㆍ조종사의 가상공격 대처 훈련용)의 핵심 부품 연구ㆍ개발 명목으로 공급가를 부풀렸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이 회장이 2009년 방위사업청을 속여 1,1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벨산의 하청을 받은 SK C&C가 EWTS 핵심장비를 재하청 등으로 구입해놓고 마치 새로 연구ㆍ개발한 양 가장해 거액을 편취했다는 검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계약서 등에 해당 장비들의 ‘설계ㆍ개발’ 공급 의무가 있다고 돼 있지, ‘새로 연구ㆍ개발’해야 한다고 돼 있지 않았으며, 재하청이 금지돼 있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방산비리 혐의가 무죄가 되니 연관된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무죄가 났다. 또 이 회장이 외국 회사로부터 받은 중개수수료를 차명계좌 등으로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와 조세ㆍ조세범처벌법 위반)도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가 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회장이 회삿돈 약 100억원을 횡령하고, 국군기무사령부 군무원 2명에게 “일광공영의 보안점검을 잘 좀 봐달라”는 취지로 뇌물 총 1,505만원을 건넨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또 자신이 이사장인 학교의 교비를 임의로 사용한 혐의(사립학교법 위반 등)와 하청업체의 컴퓨터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무단 복제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4월을 선고했다.
지난해 3월 기소돼 1년 7개월 만에, 공판만 무려 80회가 열린 이 회장의 방산비리 사건마저 무죄가 나면서 검찰은 힘이 빠지게 됐다. ‘통영함 납품비리’사건의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최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을 비롯해 ‘뚫리는 방탄복 납품비리’ 등 방산비리 사건에서 올해 무죄가 잇따르며 검찰이 곤혹스러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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