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체휴무는 꿈도 못 꿔
오후 근무자는 출근 전에 봉사
미참여 직원에겐 경고 주기도
2. 봉사 유인 지원방안 미흡
대외 이미지 고려 규모만 확대
“보여 주기식 패러다임 바꿔야”
국내 한 대기업 신입사원인 신모(25)씨는 요즘 퇴근 후 짬을 내 뜨개질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부여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다. 독거노인들에게 보낼 목도리를 하나 완성하면 봉사활동 4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는 올해 할당된 7시간을 맞추려 연탄 나르기 행사에도 참여했다. 주말을 희생하지 않고 근무 중 다녀올 수 있는 봉사인 까닭이다. 신씨는 “임직원 봉사나 기부금 모금 등 사회공헌 활동의 취지는 좋지만 강제하는 게 문제”라며 “일은 일대로 하고 개인 시간을 희생해 회사 봉사에 참여하려니 여유가 사라진다”고 토로했다.
이윤을 지역사회와 소비자에게 되돌려 줄 목적으로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공헌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자발적 행위를 뜻하는 자원봉사가 직원들에게 강요되는 경우가 많아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간한 ‘2015년 주요기업ㆍ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많은 기업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단체(NPO) 등과 협력해 기업특색에 맞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CJ푸드빌은 서울시아동복지협회 등과 협약을 맺고 바리스타 및 제빵사 양성을 돕는다. 포스코에너지는 한국전기안전공사와 연계해 저소득층 가구의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를 교체하고 노후 배선을 정비해 주는 재능봉사단을 운영한다.
문제는 자의반ㆍ타의반 봉사활동을 ‘강요’당한다는 점이다.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김모(27ㆍ여)씨는 얼마 전 상사로부터 “옆 부서보다 봉사를 더 많이 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는 “부서장이 모든 성과지표에서 다른 부서보다 앞서려고 해 봉사활동마저 할당량 이상을 요구한다”며 “얼마전에는 고위급 임원이 참여한 봉사활동에 나오지 않은 직원들에게 경고를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봉사활동이 업무시간 외에 이뤄지지만 대체휴무는 꿈도 꿀 수 없다는 점은 더 큰 불만이다. 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로 출근이 일정하지 않은 3년차 직장인 김모(27)씨는 주기적으로 회사가 지정한 보육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연차가 낮은 직원들 사이에는 ‘오후 근무가 잡혀 있으면 봉사는 출근 전인 오전에 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라며 “하루 종일 봉사와 업무를 소화하다 보면 보람보다 짜증이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전경련이 지난 6월 기업 사회공헌 활동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255곳 중 직원 절반 이상이 봉사에 참여한다고 답한 비중은 57.2%에 달했다. 1인당 평균 봉사시간도 2006년 7시간에서 2014년 17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에도 휴가일수나 현금 보상, 근무인정 등 기업의 지원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2012년 한국노동연구원의 ‘기업 자원봉사 지원정책의 효과’ 보고서를 보면 338개 조사 기업 중 177곳(52.4%)은 어떤 형태의 지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 관계자는 “기업들이 대외 이미지를 고려해 앞다퉈 봉사활동 규모를 확대하고 있으나 사내조직 구축 등 하드웨어 보완에 치우쳐 있을 뿐, 봉사를 유인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자원봉사가 사회공헌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만큼 활동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강제적인 주말 봉사 같은 보여주기식 활동으로는 직원들의 동기의식을 자극하기 어렵다”며 “기업 역량을 살려 중소기업이나 사회조직 등에 임직원을 파견한 뒤 도움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자원이 투입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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