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필리핀 딛자마자 체포.. 성폭행 동명이인 ‘악몽의 한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필리핀 딛자마자 체포.. 성폭행 동명이인 ‘악몽의 한달’

입력
2016.10.26 16:09
0 0

법원 “다른 사람이라 주장 말고

범인 아니란 증거 대라” 생떼

겨우 피해자 찾아내 혐의 풀고도

귀국길에 이민국이 또 붙잡아

“보석금도 못 찾고 돌아와

한국인 보는 눈 많이 뒤틀린 듯”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업차 필리핀에 입국했던 40대가 단순히 ‘동명이인’인 탓에 성폭행 미수 지명수배자로 몰려 한 달간 억류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주필리핀한국대사관 영사까지 직접 나서 진범과 다른 인물이라고 확인했지만 필리핀 법원은 “피해자를 직접 데려오라”며 추가 소명까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5일 사업차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입국한 한국인 약사 김모(45)씨는 악몽 같은 한 달을 보냈다. 필리핀 입국과 동시에 현지 경찰에 연행된 것이다. 그가 연행된 건 지난해 10월 필리핀 현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한국인과 이름이 같아 동일인으로 오인됐기 때문. 김씨는 동명이인이라고 항변했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김씨는 이튿날 보석금 12만페소(약 300만원)를 내고 풀려났지만 곧바로 법원으로 넘겨졌다.

법정에서 판사는 김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자료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씨는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이 발급한 확인서(이름, 생년월일 포함)와 성폭행 미수 사건이 발생한 날에 한국에 있었다는 출입국 기록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판사는 “진범이 다르다는 증거대신 (김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오라”며 한달 가량 뒤인 10월 11일을 공판 기일로 정하고, 법정 출두를 명령했다.

당초 3박5일로 예정한 체류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다급해진 김씨는 현지 법무법인과 계약해 재판 날짜를 9월 26일로 앞당겼고, 판사로부터 피해자를 직접 데려오면 혐의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겨우 받아냈다.

김씨는 피해자를 수소문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소장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이미 이사한 뒤였다. 우연히 한국인 목사가 있는 필리핀 교회를 찾았다가 교민들을 통해 현지에서 사업을 하던 진범의 운전기사와 연락이 닿았다. 김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피해여성 이름을 검색한 뒤 나온 4명의 사진을 운전기사에게 보여줬고, 운전기사는 1명을 피해자라고 특정했다. 피해자는 진범이 운영한 회사의 직원이었다.

피해자는 김씨의 설득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한국대사관 측은 “한국인에게 반감을 가진 필리핀인에게 돈보다는 인정에 호소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김씨는 자신이 이용한 여행사의 필리핀 여성직원을 통해 메신저로 지속적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결국 지난 3일 김씨는 피해여성의 승낙을 얻어 법정에 함께 섰고,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완전히 소명할 수 있었다.

김씨는 다시 나흘 뒤 필리핀을 떠날 때도 고초를 겪어야 했다. 공항에서 다시 이민국에 잡혔는데 한국대사관 직원이 재판자료를 보여주고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는 한 달간 거의 일을 하지 못했고 변호사비와 국내 약국 운영비로 2,100만원을 쓰는 등 재산상의 피해도 입었다.

그러나 김씨는 손해배상 소송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한 달이었다. 마지막엔 보석금도 되찾지 못하고 돌아올 정도였다”며 “한국인에 대한 필리핀 현지인의 시각이 많이 뒤틀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성폭행 미수 사건으로 필리핀 당국에 고소된 진범은 현지 재판 과정 중 석연치 않게 출국해 한국으로 왔다가 외국환관리법 위반 및 해외도박 혐의로 붙잡혀 국내 구치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