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은 금을 무릎에 안았다. 우륵이 오른손으로 맨 윗줄을 튕겼다. 소리는 아득히 깊었고, 더 깊고 더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우륵의 왼손이 사라져가는 소리를 들어올렸다. 소리는 흔들리면서 돌아섰고, 돌아서면서 휘어졌다.”
25일 오전 11시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무거운 고요 속에 소설가 김훈이 장편 ‘현의 노래’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1,500여년 전 가야 왕국과 궁중 악사 우륵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에서 그가 소리 내 읽은 부분은 우륵이 신라로 넘어가 진흥왕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대목.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 김형섭이 가야금으로 ‘하현도드리’를 연주하며 운치를 더했다.
연주를 듣고 난 김훈은 “가야에서 철제 무기를 만드는 곳이 지금의 고령지역이다. 무기를 만드는 곳 옆에서 우륵의 악기도 만들고 있었다. 우륵은 적국에 가서 음악으로 적국을 지배하고 조국의 이름을 붙여 후세에 남겼다. 인간의 순환과 반복, 무기와 (음악의) 공존 이걸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이렇게 쓴 소설이 다시 음악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른다. 김훈의 동명 장편을 원작으로 한 국악극 ‘현의 노래’가 11월 10~2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초연된다. 이병훈 연출가의 재해석, 류형선 음악감독의 선율이 어우러진 작품은 원작의 등장인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우륵과 제자 니문, 가야왕의 신아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듬는다. 주인공 우륵 역은 김훈의 낭독에 가야금을 연주한 김형섭이 맡고, 우륵의 제자인 니문 역은 뮤지컬 배우인 김태문이 맡았다. 김훈은 이날 열린 브런치 콘서트 ‘다담’에 출연해 국악극 ‘현의 노래’에 대해 “가야금과 우륵에 관한 소설이라 국악공연이 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의 노래’ 집필 당시의 취재 과정 일부도 소개했다. 2003년 1~10월 국립국악원 악기박물관을 여러 번 찾아 영감을 얻었다는 김훈은 “여러 악기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악기는 있는데 연주법이 알려지지 않은 악기가 있었다. 죽은 게 아니라 몇 백 년 간 잠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출간한 소설 서문에서 그는 ‘그 악기들의 내면의 맹렬한 적막에 관하여 쓰기로 작정을 하고…. 그러나 들리지 않는 적막을 어찌 말로 옮길 수 있었겠는가’라고 썼다.
국악극 제작에 대해 선뜻 동의했지만 연출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글은 아무리 해봐야 음악을 따라잡을 수 없죠. 음악은 가장 지고지순한 순수한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예술인 것입니다. 글을 그 다음인 것이지요.” 그는 “영혼은 가수인데 몸은 음치”라며 “내세가 있다면 글이 없는 시대에 태어나 기타 멘 가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악원은 ‘현의 노래’ 공연화를 결정하고 1년 가까이 정성을 들였다. 김훈의 유려한 문장은 내레이션으로, 극중 배역의 감정은 아리아로, 극 전개를 이끄는 음악을 합창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콘서트에는 국악극 ‘현의 노래’의 일부도 처음 공개됐다. 가야금병창 전공자 6명을 ‘현녀(絃女)’로 배치해 우륵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의 재현한 노래는 창극 같은 현대적인 국악 멜로디가 돋보였다. 4분 남짓 시연되는 동안 몸을 틀어가며 노래를 감상한 김훈은 “음악을 연주하는 인간이 제일 아름다운 인간”이라며 “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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