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학교에는 ‘맑은책집’이라는 손바닥만 한 문학전문서점이 있었다. 나는 용돈이 떨어지기 전에 꼭 사고 싶었던 소설과 시집을 조심조심 고르곤 했다. 한강의 ‘여수의 사랑’도 맑은책집에서 샀고 김한수의 ‘그대, 기차 타는 등 뒤에 남아’도 그곳에서 샀다. 15년쯤이 지나 문단 사석에서 소설가 김한수를 만났을 때 나는 하도 반가워 “선생님, 저 옛날에 선생님 소설 정말 좋아했어요. 우리한텐 필독서였는데.” 막 떠들었다. 그는 소년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그럴 리가요. 제 소설 따위가 뭐라고요.” 나는 그 소설집에 묶였던 7편의 단편 제목을 줄줄 외어 보였다. 아마도 시끌벅적한 송년회 자리였을 텐데, 그는 소주잔을 양손으로 꼭 쥔 채 끄덕끄덕 웃어보이더니 나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소설 열심히 써야할 것 같네요. 정말이요. 그동안 막 쓴 것 같아서 부끄럽고… 고맙고요.”
소설가 한강은 마을버스에서 만났다. “서령씨랑 같은 동네였네요. 몰랐어요.” 당연히 할 말이 별로 없었으므로 그녀와 나는 그냥 헤벌쭉 헤벌쭉 웃다가 헤어졌다. 며칠 후 소설가 한강은 나에게 갓 출간한 책을 한 권 보내주었다. 나는 책을 안고 소파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혼자 기뻐했다. 그녀가 우리 동네에 산다는 사실이 그냥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작가들을 한 사람씩 맞닥뜨리는 건 그런 느낌이었다. 겸손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목소리에, 나는 또 흉내라도 내볼까, 책상 앞에 앉게 되는 일. 하지만 날것의 욕망들을 제대로 들켜버린 작가들의 추문이 요며칠 쉼 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등뼈가 시큰시큰해 온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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