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환수처분 취소해야” 병원 손 들어줘
건보공단 “839억원 규모 환수처분 취소될 위기”
의료인의 복수 의료기관 개설 금지 규정을 어긴 네트워크 병원을 상대로 급여를 환수해온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해당 규정을 위반한 병원이라도 환자에게 정당한 진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공단은 “모순된 법원 판결 탓에 839억원 규모의 환수 처분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며 항변하고 있다.
24일 공단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T병원 원장 A씨가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단이 “T병원은 의사 B씨가 다른 의사들의 명의를 빌려 개설ㆍ운영하는 네트워크 병원 중 하나로, 복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33조 8항)과 의사 명의대여 금지 조항(4조 2항)을 어겼다”며 재작년 4월 내린 급여 환수처분을 무효화한 것이다. 해당 의료법 조항들은 의료 영리화 방지 차원에서 2012년 2월 신설됐다.
공단은 건강보험법상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42조 1항)만이 건보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T병원은 의료법을 어겼기 때문에 청구 자격이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법원은 ▦T병원은 관련 의료법 조항이 생기기 전인 2008년 당시 의료법에 적법하게 설립돼 보험급여 청구 자격이 있고 ▦복수 의료기관 개설이나 명의 대여는 보험급여 환수 대상 행위인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건강보험법 57조 1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공단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당혹한 표정이 역력하다. 공단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은 같은 법원이 동일인ㆍ동일쟁점에 대해 내린 판결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급여 환수 처분에 앞서 공단의 진료비 지급 처분을 받고 T병원이 제기한 처분취소 소송에서 서울고법이 2014년 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당시 법원은 복수 의료기관 개설이나 명의 대여는 모두 건보법 57조 1항에 규정된 ‘부당한 방법’에 해당된다고 봤다.
복수 의료기관 개설 관련 소송에서 공단이 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단은 지금까지 불법 네트워크 병원을 포함한 56개 의료기관에 대해 839억여원 규모의 환수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자칫 이를 뒤집으려는 소송전이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공단은 또 “이번 판결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무장병원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무장병원이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고용하던 단순 형태에서 의료생협이나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설립해 여러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견제할 법적 장치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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