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더라도 꼭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의 추모비를 건립해다오.”
애국지사 고 강근호 선생의 아내이자 6ㆍ25전쟁에 참전했던 이정희 여사가 유족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21일 영면했다. 향년 84세. 2008년 뇌출혈로 인한 긴 투병생활에도 이 여사의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고인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고 이시영 박사의 증손녀로, 6ㆍ25전쟁 중이던 1952년 학도의용군으로 입대, 지리산 전투에 참전했다. 그가 평생의 부군인 강근호 지사를 만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강 지사는 북로군정서의 중대장으로 일본군과 싸웠고 광복 후 52세에 육사 8기로 임관했다. 이 여사와는 강원 양구군에서 연대장과 부하로 만났다. 강 지사로부터 독립운동활동을 들은 이 여사는 34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고 한다.
결혼생활은 길지 않았다. 1960년 강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과 8년 남짓이었지만 고인은 남은 평생을 남편과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활동에 투신했다. 30년만인 1990년 마침내 강 지사의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이 일었고 그해 정부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강 지사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됐다.
고인은 1963년 말 제대군인 10여명과 함께 부산 해운대구 장산에서 ‘장산 개척단’을 조직, 일대 66만여㎡(20여만평)을 개간해 마을을 일궜다. 이 여사는 2005년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를 발족해 활동하다가 2008년 초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들 강귀철씨는 “어머니는 생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아버지의 정신을 후대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며 “또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의 추모비를 만주벌판에 세워달라는 유지를 받들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의 장례는 24일 오전 가족장으로 진행됐고, 유해는 25일 강 지사가 영면한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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