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3년 전 청와대 전출 기간 중 비위행위가 적발된 고위 간부의 명예퇴직을 승인해 수당까지 챙겨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공정위는 명예퇴직 심사 당시 비위행위 적발 사실을 몰라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내부 직원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4일 공정위가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A법무법인에서 공정거래 업무를 담당하는 B씨는 2014년 2월 근무하던 공정위에서 명예퇴직을 승인받았다. B씨는 공정위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실력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3년 7~10월 청와대 전출 기간 중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의해 대기업으로부터 향응 등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고 이를 이유로 전출 기간을 1년도 채 채우지 못한 채 같은 해 11월 공정위로 원복 조치됐다.
공정위로 돌아온 B씨는 곧바로 공정위에 사직 의사를 밝히며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 공정위는 경찰·검찰·감사원·공정위 감사담당관실 등에 B씨의 비위 사실 전력을 조회한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 결국 B씨의 명예퇴직을 승인했다. 통상 공무원의 명예퇴직은 재직 기간의 비위행위 여부 등을 조사해 문제가 없을 경우에만 승인하도록 돼 있다. 명예퇴직 승인이 나면 예산 범위 내에서 명예퇴직 수당이 별도로 지급되고 특별승진 대상자가 된다.
공정위는 심사 당시 B씨의 비위 사실을 알지 못해 명예퇴직 승인 결정이 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즉 B씨의 명예퇴직 심사가 2014년 1~2월에 진행된 반면 청와대는 두 달여 뒤인 4월에서야 B씨의 비위 사실을 통보해 명예퇴직 심사에 비위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명예퇴직 심사 당시 청와대에서 B씨의 비위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위로서는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며 “수사·감사기관에 비위 전력을 조사했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B씨가 공정위로 돌아온 직후 일부 언론이 청와대에서 원소속으로 돌아간 행정관 중 일부는 징계성으로 원복 조치된 것이라고 보도한 만큼 공정위로서는 충분히 인지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당시 관련 기사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위 사실 적발로 ‘의원면직’조차 제한받을 수 있었던 B씨는 결국 공정위로부터 명예퇴직을 승인받았고 반년도 채 되지 않아 국내 A로펌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A로펌에서 자신의 친정인 공정위를 상대로 한 소송 등 공정거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A로펌은 B씨를 영입한 뒤 과징금 감경 인용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돼 주목을 받고 있다. A로펌이 2013~2014년 대리한 과징금 부과 이의신청은 공정위에 단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2014년 7월 B씨를 영입한 뒤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A로펌은 지난해 대리한 과징금 부과 이의신청 중 5건이 인용돼 총 76억6천만원의 과징금을 감경하는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B씨의 명예퇴직 사례가 뒤늦게 드러나면서 이직이 잦은 공정위 직원의 면직 요건을 이전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검찰·감사원·감사담당관실 등으로 나열된 비위 사실 전력 조회기관 범위를 확대하고 재직 기간에 적발된 비위행위에 대한 조사와 징계도 더 엄격히 할 필요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언론 보도와 공정위로 원복조치 된 시점 등을 볼 때 해당 직원의 비위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며 “경제검찰 역할을 담당하는 공정위의 독립성, 공정성 강화를 위해 퇴직 심사와 재취업 심사의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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