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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장춘몽 ‘세피아’

입력
2016.10.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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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말 출시된 세피아의 부분변경 모델 뉴 세피아. 기아자동차 제공
1994년 말 출시된 세피아의 부분변경 모델 뉴 세피아. 기아자동차 제공

포드 마쓰다와 3각 협력 체제로 ‘프라이드’를 개발한 기아자동차는 1992년 9월 22일 ‘S카 프로젝트’로 자체 개발한 준중형 세단 ‘세피아’를 출시했다. 해외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쌓은 노하우가 독자 모델로 이어진 것이다.

세피아는 이보다 앞선 91년 가을 일본 도쿄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도쿄 인근 전시장 마쿠하리메세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스포티지’와 함께 무대에 오른 세피아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첫 해외모터쇼 취재여서 기억이 생생하다.

1년 뒤 국내 발표는 한국종합전시장(현 코엑스)에서 진행됐다. 기아차는 해외 수출의지를 담은 세계 각국 민속무용 공연도 함께 선보였다. 세피아는 기아차의 수출전략 차종이었다.

세피아는 얇고 늘씬한 차체를 자랑했다. 투박한 기아차 디자인을 벗어나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을 뽐냈다. 당시 배기량 1.5ℓ급 차량에서는 유일하게 뒷바퀴에도 다수의 지지대를 쓰는 ‘멀티링크 방식’ 현가장치(서스펜션)를 채택했다. 덕분에 경쟁모델보다 뛰어난 조종 안정성과 승차감을 확보했다. 가격은 639만~766만원이었다.

세피아 엔진은 정비 편의를 위해 앞으로 10도 가량 기울게 배치됐다. 보닛 등 차체 주요 부위의 30% 정도는 고장력 강판이라 안전성이 높았고, 전면충돌 시 엔진룸이 실내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는 ‘T바’도 부착됐다. 자동에어컨과 접이식 사이드미러도 적용됐다.

1.5ℓ 가솔린 엔진은 일본 마쓰다 제품이다. 프라이드와 스포티지를 거치며 일취월장한 기아차 제조능력을 실감한 마쓰다가 플랫폼(기본차체) 제공을 꺼려 엔진만 제공한 것이다.

1997년 출시된 세피아Ⅱ 후측면. 기아자동차 제공
1997년 출시된 세피아Ⅱ 후측면.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차는 세피아를 만들기 위해 아산공장을 짓는 비용까지 합쳐 무려 1조원을 투자했다. 이 많은 돈을 쓸 수 있었던 건 미니버스 ‘봉고’ 덕이다. 80년 자동차산업합리화 조치로 승용차 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아차는 82년 봉고를 내놓으며 기사회생했다. 봉고가 창출한 이익이 세피아 개발의 종자돈이 됐다. 세피아는 봉고 출시 후 1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93년 세피아는 동남아시아 최대시장인 인도네시아 국민차로 선정됐다. 국가적인 쾌거였다. 그러나 특혜라며 반발한 일본 업체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는 1998년 ‘기아차에만 사업기회를 주는 건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세피아의 인도네시아 국민차 꿈은 일장춘몽처럼 사라졌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수하르토 정권도 몰락했다. 만약 세피아가 인도네시아 국민차가 됐다면 기아차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 기아차를 인수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다시 인도네시아 와히드 대통령을 만나 사업 재개를 노렸지만, 와히드 대통령도 탄핵으로 물러나며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다. 지금까지도 동남아 시장은 일본차들의 독무대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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