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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포퓰리스트 반란 제대로 읽기

입력
2016.10.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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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2016년은 엘리트 계층에 대한 반란의 해였다.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캠페인에 성공했고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독일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크게 약진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필립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세계 질서(1945년 확립되고 냉전 종식 이후 확산된 자유주의 원칙 기반 체제)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화는 후퇴하고 있다.” 사실 그렇게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시기상조일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근 포퓰리즘이 급증하고 있는 것을 1990년대의 ‘과도한 세계화’ 탓으로 돌린다. 그중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특히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승인과 국제 금융 흐름의 자유화가 주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받는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1년 사이 중국산 수입품이 밀려든 탓에 미국 제조업에서 약 100만개, 공급 업체와 관련 산업에서 24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이렇게 주장한다. “일각에선 세계화를 반대하고 있는데 세계화 덕분에 10억명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이들은 잊고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는 그렇다 해도 경제학자들에게 뒤처진 사람들을 챙겨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덧붙인다. 저성장과 늘어나는 불평등은 정치적 불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유행을 단지 경제침체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폴란드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매우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는데도 포퓰리스트 정부를 선출했다. 이와 달리 캐나다는 반체제 분위기가 나라를 휘젓고 있는 미국의 이웃 나라인데도 올해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았다.

미국 정치과학자들인 로널드 잉글하트 미시건대 교수와 피파 노리스 하버드대 교수는 면밀한 연구를 통해 유럽 포퓰리스트 정당 지지율 상승이 후기산업사회의 노동력 변화에 직면한 경제적 불안정보다 문화적 반발과 더 큰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한때 전체 사회에서 우월한 영역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가치 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퓰리즘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잉글하트와 노리스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1970년대의 조용한 혁명(물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데서 벗어나 탈 물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데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문화적 변동)이 오늘날의 성나고 울분에 찬 반혁명적 반동을 낳은 듯하다.”

미국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지지자 중에는 나이가 많고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남성이 많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청년과 여성, 소수자를 대표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미국 유권자들의 40%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한다. 하지만 고용지수가 전국적으로 낮은 지금, 트럼프가 주로 경제 침체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다는 설명은 40% 이상의 지지층 가운데 아주 일부분에만 해당한다.

반대로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포퓰리즘의 부활에는 경제학 외에 많은 요인이 있다. 영국 주간 이코니미스트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트럼프 지지층 사이에는 다른 인종에 대한 분노가 강했다. 트럼프는 ‘버서(birther)’ 논란(미국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정말 미국 태생이 맞는지 의심하는 것)을 이용해 현재의 대선 유세를 이끌어가고 있다. 또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에 벽을 세우고 멕시코에 비용을 부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비롯, 이민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이민 배척주의자의 지지를 초기부터 단단하게 다졌다.

그럼에도 최근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선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조사 대상 성인 중 51%가 이민자들이 미국을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든다고 말했다. 반면 41%는 이민자가 짐이 된다고 말했다. 이는 대침체기의 강렬한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던 2010년대 중반 조사에서 나타난 50%보다 떨어진 수치다. 반면 유럽에선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갑자기 대거 밀려 들어온 정치ㆍ경제 난민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영국으로 유입되는 이주자들에 대한 반감이 EU의 관료주의에 대한 불만보다 브렉시트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

상류 엘리트에 대한 반감은 경제ㆍ문화적 분노에서 생길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지역의 주요 지표를 미국이 제조산업을 포기한 지난 수십년간 생계가 나빠진 백인 노동자계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적 세계화가 없었다 해도 문화ㆍ인구학적 변화는 일정 정도의 포퓰리즘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이 세계화 시대를 종식할 고립주의 경향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과장이다. 그 대신 세계화와 열린 경제를 지지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상류 엘리트들은 경제적 불평등 해결과 변화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사회기반시설 투자처럼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들 역시 중요할 것이다.

유럽은 이주에 대한 반감이 높아서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 선거 유세의 과열된 수사학에서 미국 여론의 장기적 경향을 너무 많이 읽어내려 하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공들인 새로운 무역 협정의 전망이 악화하는 사이, 정보 혁명은 글로벌 공급 사슬을 강화했다. 그리고 1930년대(또는 심지어 1980년대)와 달리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없었다.

사실 미국 경제는 무역 의존도를 계속 높여왔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총 국내총생산(GDP)에서 상품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까지 증가했다. 더구나 인터넷 시대에 초국가적인 디지털 경제가 GDP에 기여하는 부분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4년 미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분야에서 4,000억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미국의 전체 서비스 수출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치다. 시카고 외교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5%의 미국인이 대체로 세계화가 미국에 도움을 준다고 했고 국제무역이 미국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 사람은 59%였다. 특히 젊은 층의 지지가 높았다.

그러니 정치에서 2016년은 포퓰리즘의 해가 되겠지만 세계를 대하는 미국인의 현재 태도가 ‘고립주의’라는 건 정확한 설명이 아닐 것이다. 사실 트럼프의 수사법은 가장 중요한 측면, 말하자면 이민과 무역 문제에서 대다수 유권자의 정서와 일치하지 않는 듯하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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