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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의 오늘을 만든 연기4

입력
2016.10.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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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관객을 돌파한 '럭키'는 유해진의 '개인기'에 많이 기댄 코미디 영화다. 쇼박스 제공
300만 관객을 돌파한 '럭키'는 유해진의 '개인기'에 많이 기댄 코미디 영화다. 쇼박스 제공

유해진은 충무로에선 특별한 존재다. 배우라면 응당 지녀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다. 성격파 배우라 하기엔 몸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그리 강렬하진 않다. 주연을 보조하며 이야기를 전진시키는데 힘을 보태는 배우가 되기 십상인 외모다. 하지만 그는 단역과 조연, 공동 주연을 거쳐 단독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연기력만으로 단역에서 주연으로 성장한 배우들이 없지는 않으나 유해진은 다르다. 감초 배우들이 주연에 나섰다가 흥행이라는 장벽 앞에서 무릎 꿇었던 여러 사례들과 달리 유해진 주연작은 관객과도 통했다. 21일까지 317만6,79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관람하며 흥행 질주를 지속하고 있는 ‘럭키’가 유해진의 남다른 면모를 대변한다. 웃음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다가도 간혹 서늘한 기운을 스크린에 전해온 유해진의 연기 이력이 ‘럭키’에서 만개한다. 냉혈 살인청부업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선한 무명 배우의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는 유해진이 이제껏 쌓아온 여러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다. 유해진의 오늘을 있게 한 연기 넷을 꼽아봤다.

유해진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짧게 얼굴을 비추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유해진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짧게 얼굴을 비추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이한 배우, 얼굴을 알리다(‘주유소 습격사건’)

당황하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배우 맞나, 촬영장에서 즉석 캐스팅했나 의문 어린 말들이 오갔다. 아무리 단역이라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배우 외형이 아니었고, 배우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연기가 뛰어났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에 잠시 등장하는 일명 ‘양아치1’ 용가리는 관객의 마음에 큰 의문을 심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

‘주유소 습격사건’은 유해진의 얼굴을 대중에 알린 첫 작품이다. 그는 한 주유소를 차지하고 장난기 가득한 폭력을 행사하는 노마크(이성재) 일행에 대적하는 동네 불량배로 등장한다. 아는 비행청소년 무리가 노마크 일행에게 얻어맞고 도움을 요청하자 당구대를 휘두르며 흥분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을 알린다. 주유소를 찾아가 노마크 일행과 육탄전을 벌이다 쌍코피까지 터지며 양아치 우두머리의 체면을 구기게 된다. 이후 중국음식을 배달해 먹는 노마크 일행 앞에서 애교 어린 율동을 곁들여 노래 ‘희망가’를 자신의 무리들과 부른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명장면 중 하나다. 영화 속 주요 인물 뻬인트를 연기한 유지태가 전하는 후문. “(유)해진 형을 처음 봤을 땐 정말 동네 불량배를 섭외한 줄 알았다.”

유해진(오른쪽)은 '공공의 적'에서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의 살인청부업자로 나와 웃음을 안긴다.
유해진(오른쪽)은 '공공의 적'에서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의 살인청부업자로 나와 웃음을 안긴다.

감초 배우의 탄생(‘공공의 적’)

영화 ‘신라의 달밤’(2000)과 ‘무사’(2001) 등을 거치며 조연으로 자리 잡아가던 유해진은 ‘공공의 적’(2002)으로 충무로 ‘신 스틸러’의 면모를 과시하게 된다. 그는 여러 칼을 사용하는 살인청부업자 용만 역할을 맡아 또 다른 감초 배우 성지루와 연기 앙상블을 이룬다.

칼에 찔려 죽은 피해자의 시체를 두고선 어떤 칼이 사용됐는지, 치명상은 무엇인지를 서로 다투는 와중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웃음 짓게 된다. 공간과 대사가 유머와는 거리가 먼데도 유해진과 성지루의 조화로 영화는 활기를 띤다. 몸에 꼭 끼는 하얀 바지를 입은 용만이 입씨름 끝에 “내가 오늘 니 배때지에 칼 꽂고 애국가를 불러야 쓰겄다”라며 살벌한 말을 전라도 사투리를 전하는데 관객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유의 9할은 유해진이다. 유해진은 ‘공공의 적’을 발판으로 출연 영화가 어떤 장르이든 웃음 하나만은 확실히 책임지는 감초 배우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유해진(왼쪽)은 영화 '타짜'에서 넉살 좋고 사람 좋은 고광렬을 연기하며 영화팬의 눈길을 잡는다.
유해진(왼쪽)은 영화 '타짜'에서 넉살 좋고 사람 좋은 고광렬을 연기하며 영화팬의 눈길을 잡는다.

‘넉살 해진’의 절정(‘타짜’)

불법적으로 돈이 오가고 자칫하면 손목이 날아가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약삭빠르거나 악랄하거나 타고난 손재주가 있거나 뱃심이 보통 아니거나 두뇌회전이 유난히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노름판에서 고광렬(유해진)은 넉살과 인간미에 기대 생계를 챙긴다. 타짜라 하기엔 민망한 화투 실력인데도 일급 노름꾼들에게 붙어 돈을 버는 고광렬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타고난 승부욕과 재능 때문에 노름세계에 뛰어든, 그러나 불의와는 거리가 먼 주인공 고니(조승우)가 평경장(백윤식)과 함께 정신적 의지를 하게 되는 노름판 동료다.

상대의 약을 올리다가 달래는 듯한 사람 좋은 웃음소리, 자기 그릇에 맞는 몫만 챙기는 자신만의 원칙, 순박한 의리 등이 결합해 고광렬이라는 캐릭터가 완성되는데, 스크린 밖 인간 유해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타짜’는 극의 중심에 서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리듬을 조율하는 유해진의 탁월함이 빛을 발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이야기 조율사로서의 유해진의 진가는 이후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서도 빛을 낸다.

유해진은 영화 '부당거래'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로 등장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유해진은 영화 '부당거래'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로 등장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악인으로 우뚝 서다(‘부당거래’)

선하거나 소시민적 역할을 주로 했던 유해진이 악인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유해진의 영화 데뷔작은 최민수 강수연 주연의 스릴러 ‘블랙잭’이다. 형사 오근세(최민수)와 운전 중 시비가 붙는 트럭 운전수를 연기했다. 근세의 운전 방해를 위해 우유팩을 앞 창에 던지는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마치 유해진이 앞으로 잘할 수 있거나 가능한 역할은 악역뿐이라는 암시로 읽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유해진은 웃음기 머금은 역할들을 주로 소화해내며 악인과는 멀리 떨어진 배우로 이미지를 형성했다.

‘부당거래’는 유해진이 그저 웃음에 기댄 감초 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형사 최철기(황정민)의 부당한 요청을 받고선 잡범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드는 사채업자 장석구를 연기하며 악역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과시한다. “이 놈의 대한민국은 살인을 해도 정신병자는 저~얼대로 사형을 시키지 않아”라고 너스레를 떨다가 “너 지금부터 범인해라”며 차갑게 말하는 장석구의 비열한 성정은 유해진을 통해 스크린에 확연히 발산한다. ‘베테랑’(2015)과 ‘그놈이다’(2015)의 악인 연기도 ‘부당거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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