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등 자발적 퇴직자, 전체 퇴직자 중 많게는 90%이상 차지…4급이상 고위직 집중
임금체계 개편, 김영란법으로 영향력 축소 우려해 민간기업으로 이직
올해로 만 57세가 된 한국철도공사 1급 임원인 A씨는 내년이면 임금피크제 대상에 포함됩니다. 정년을 2년 늘릴 수 있지만 연봉(8,811만원)은 현재보다 50% 줄어든 4,405만원이 되고, 보직도 철도박물관에서 철도역사를 정리하는 식의 한직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명예퇴직을 선택하면 퇴직수당 5,099만원을 챙길 수 있지만 일자리를 잃게 되죠.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민간철도운영회사와 민자역사에서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임원급 보직에, 연봉도 기존보다 20%이상 높을 뿐만 아니라 정년(60세)까지 보장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는 “기존 업무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꺼림칙한 마음도 들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이런 제안도 오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명예퇴직 등 자발적 퇴직이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철도공사의 경우 올해 퇴직자 중 92.8%가 자발적 퇴직자였을 정도로 비중이 높았습니다. 공공기관에도 성과중심문화 확산 바람과 함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시행으로 자신의 영향력이 적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고위직들을 중심으로 민간기업으로 이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현재 퇴직자가 10명 이상이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교통안전공단, 한국건설관리공단, 한국국토정보공사 등 국토부 산하 7개 공공기관의 자발적 퇴직 비율이 적게는 65.2%에서 많게는 92.8%에 달했습니다. 이들 기관의 지난 3년간 자발적 퇴직자 비율이 20%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수치입니다. 자발적 퇴직자는 정년퇴직ㆍ당연퇴직ㆍ사망퇴직ㆍ징계퇴직ㆍ임기만료 등을 제외한 명예퇴직과 의원면직을 뜻합니다.
자발적 퇴직자 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철도공사는 지난 3년간 자발적 퇴직자 비율이 16.77%에 불과했고 지난해에도 22.2%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올해 총 320명 중 187명이 명예퇴직, 110명이 의원면직으로 각각 회사를 떠나면서 비율이 70%포인트 이상 껑충 뛰었습니다.
한국공항공사도 ‘27.4→89.7%’로 1년 새 62.3%포인트 증가했고 LH와 교통안전공단 역시 76.8%, 76.9%가 각각 올해 전체 퇴직자 중 자발적 퇴직자 비율이었습니다.
문제는 자발적 퇴직자가 4급 이상 고위직에 집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철도공사는 자발적 퇴직자(297명) 중 83.5%(248명)가 4급 이상이었고, LH는 72.0%가 4급 이상에 해당됐습니다. 민간으로 이직해 전관예우를 받으며 자칫 검은 커넥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퇴직이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임금이 최대 50%까지 줄어들고, 다른 업무를 후배들과 경쟁적인 관계에서 해야 한다는 고충이 컸을 것”며 퇴직배경을 성과중심의 임금구조 개편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한 몫을 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민간업체들이 부정청탁 금지로 영향력 축소를 우려하는 공직자들 심리를 이용, 대규모 스카우트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실제 한국철도공사에서는 올해 6월 자발적 퇴직한 1급 B씨는 아이파크몰로, C상임이사는 롯데역사로 각각 자리를 옮겼습니다. 7월에는 또 다른 1급 임직원이 수원애경역사로 재취업했습니다. 한국관리공단에서 올해 의원면직한 2~4급 10여명도 공단에서 쌓은 경력을 이용해 민간 감리업체 등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공공기관의 경우 기관장과 상임이사만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현희 의원은 “공공기관 고위직으로써 누렸던 기존의 여러 혜택이 축소되자 합리적 계산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며 “유착의혹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의 인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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