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날들
실비 제르맹 지음ㆍ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384쪽ㆍ1만4,800원
사랑과 분노를 흔히 인과관계로 이해한다. 틀리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 사랑이란 분노를 위한 한낱 빌미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 내면의 악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사랑과 분노 사이엔 기실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 사랑은 그저 분노의 불쏘시개일 뿐이다.
‘마그누스’의 작가 실비 제르맹의 페미나상 수상작 ‘분노의 날들’(1989)은 사랑과 분노를 착각한 자가 벌인 3대에 걸친 파멸의 이야기다. 제르맹 특유의 몽환적이고 시적인 문장들, 구체적 시공간을 적시함에도 서사공간을 지배하는 신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하다. 인간 내면의 광기와 종교적 초월성, 격정적으로 밀고 나가는 거침 없는 서사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문체 등 제르맹 소설의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다. 데뷔작 ‘밤들의 책’으로 6개 문학상을 석권하며 프랑스 문단에 돌풍을 일으킨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자 출세작이다.
프랑스 중부 고산지대의 벌목꾼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앙브루아즈 모페르튀라는 광기와 폭력, 질투와 집착에 사로잡힌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파멸과 몰락을 그린다. 가난하고 거친 벌목꾼 모페르튀는 어느 새벽 부유한 숲의 주인인 뱅상 코르볼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 카트린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세상의 모든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이 관능적 요부는 가정 생활의 권태와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이른 새벽 도시로의 탈출을 감행했다가 붙들린 터다. 부부는 욘 강가에서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고, 남편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주머니 속 편지 뜯는 칼을 아내의 가슴에 꽂는다.
본능적으로 기회임을 간파한 모페르튀는 강 건너편에서 뱅상 코르볼의 이름을 쩌렁쩌렁 부름으로써 숲의 정령들만 이들의 난투극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았음을 알리고, 아내의 시신 처리와 비밀유지를 조건으로 재산권을 모두 넘길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뒤늦게야 이해하고 소스라친 뱅상은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범죄에 합당한 벌, 야비하고 구역질 나는 벌에 자신을 곧장 넘겨주기 위해” 모페르튀의 제안을 말없이 받아들인다.
소설의 핵심이 되는 비극은 장차 거부가 될 운명에 웃음짓던 모페르튀가 카트린의 아름다움과 너무 뒤늦게 마주했다는 데서 싹튼다. 이제 막 숨이 끊어진 카트린의 아름다움은 “소멸의 신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최후의 눈부신 광채”를 발하고, 시신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던 모페르튀의 평생을 지배하게 된다. 셋째를 낳다 죽은 아내를 위해서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그였지만, 죽은 미녀를 향한 사랑과 열정은 미칠 듯한 것이어서, 그는 거의 엽기적인 계획을 도모한다. 자신의 장남을 카트린이 낳은 외동딸과 결혼시켜 손녀를 낳게 함으로써 카트린을 현생에 부활시키겠다는 광기로 점철된 계획이다.
수상하게 획득한 아버지의 재산과 그의 야만적 폭력성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큰 아들 에프라임은 그러나 이웃 마을의 뚱보 처녀 레네트에게 연심을 품고, 장자권을 포기한 채 풍만한 육(肉)의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위로와 안식의 세계로 떠난다. 성모의 축복과 신심으로 충일한 렌의 어머니 에드메는 아버지 모페르튀와는 모든 것이 대조적이었다. 가난하지만 성스러운 렌의 집안에서 에프라임은 건장하고 아름다운 9명의 아들을 낳고, 형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던 불운한 동생 마르소가 아버지의 미친 사랑을 재현하기 위해 외할머니를 똑닮은 딸, 요부의 아름다움으로 남자들을 유혹하게 될 카미유를 낳는다. 딸까지 모페르튀에게 보내고 스스로를 감금한 채 죄값을 치르며 살아가는 뱅상, 아버지의 노예로 비겁한 삶을 이어가던 마르소, 이들이 감행하는 반전이 아찔하게 펼쳐지며, 소설은 종국의 파멸을 향한 가속페달을 밟는다.
전지적 작가시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신의 위치에서 서사를 관장하는 작가는 모페르튀의 뒤틀린 사랑과 죄업을 일방적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조르주 상드와 도스토예프스키의 혼합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인간 내면의 어둠과 악을 강렬한 사건과 이미지를 통해 안개 낀 숲의 희부윰한 햇살 아래 꺼내 보인다. “그가 마주친 아름다움에서는 분노의 맛이 났다. 그의 삶을 오래 전부터 따라다닌 분노의 맛.” 모페르튀와 에드메와 뱅상 코르볼의 가문 모두에 들이닥친 불행과 파멸은 이 분노의 맛 때문이었다. 사랑에서 나는 피비린내 나는 분노의 맛, 그것은 사랑인 걸까, 그저 분노인 것일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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