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오래된 것들

입력
2016.10.21 13:37
0 0

예전 호주에서 지낼 때 친구가 세 들어 살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 할머니가 주인인 그 집에는 아주 예쁜 응접실이 있었다. 오래 전 죽은 남편의 사진들을 벽에 걸고, 낡고 해진 의자와 동그란 테이블을 두었다. 이가 빠졌지만 반질반질한 찻잔들이 가지런히 놓였고 꽃그림 벽지가 발린 응접실 바닥에는 술 달린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곳은 출입금지였다. 매일매일 이탈리아 할머니는 그곳을 청소했지만 그 집에 사는 누구도 응접실 의자에 앉아볼 수 없었다. 거긴 사람이 들락거리며 먼지를 피우는 곳이 아니라 할머니의 추억을 저장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응접실 외에도 끔찍하게 아끼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주방에 놓인 가스오븐이었다. 딱 보아도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하얀 오븐이었다. 어찌나 깨끗한지 오븐을 닳게 한 거라곤 행주질뿐인 것 같았다. “내가 불에 뭘 얹기만 하면 아주 뚫어져라 노려봐. 국물이라도 흘릴까봐.” 친구가 투덜거렸다. 나는 그 오븐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마르고 닳도록 닦아주며 아낄 수 있는 물건이란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할까. 나도 하얗고 커다란 오븐을 하나 사서 그렇게 수십 년을 쓰고 싶었다. 누가 건드리면 으르렁, 사나운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

얼마 전 친정에 들렀다가 내가 열 살 때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던 손수건 한 장을 찾아냈다. 핑크색은 이제 바래어 거의 흰빛이었고 캐릭터 그림도 다 지워졌지만 열 살 무렵 기억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이번에 이사를 가면 오래된 것들을 모아두는 작은 찬장이라도 하나 마련해둘까 보다. 응접실까지는 무리니까 말이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